과학과 수행평가 이야기
강신영(서산부춘중학교 과학교사)
안녕하세요. 저는 지금 중학교에서 과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저의 수행평가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머릿속 생각을 글로 잘 표현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이 사람도 나랑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구나’ 정도로 읽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과학의 꽃은 실험이야, 그러니 수행평가는 실험으로 해야 해’라는 생각으로 10여 년 전에 시골의 조그만 중학교에서 수행평가의 첫발을 내딛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무임승차나 모둠 구성에 대한 불편함이 신경 쓰였고, 그래서 모둠의 영향을 많이 받는 실험과정에 대한 평가는 줄이고, 개인 역량을 측정할 수 있는 데이터 해석이나 결론 도출에 비중을 더 두게 되었습니다.
요즘 들어서는 4C(창의성, 의사소통, 협력, 비판적 사고)나 6가지 핵심역량(지식정보처리, 창의적 사고, 공동체, 의사소통, 심미적 감성, 자기관리)과 같은 학생의 역량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개별활동보다는 모둠활동으로 수행평가를 해야 할 것 같다는 고민이 있습니다.
평가계획서 제출일이 지나서도 해결되지 않는 수행평가에 대한 고민은 시간에 쫓겨 아쉬운 상태로 제출하면서 잠시 사그라들었다가, 평가일이 다가와 학생에게 안내할 때가 되면 진한 아쉬움이 다시 올라옵니다. 경력이 쌓이면 편해지겠지라고 생각했는데, 그 반대입니다. 뭔가를 바꾸고 새롭게 도전해야 해결이 될 것 같은데 쉽지는 않습니다. 내신 성적에 예민한 고등학생들을 만나면서 저의 상상력과 도전정신이 많이 움츠러들었던 것도 같습니다.
나는 수행평가에서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을까?
수행평가를 준비하면서 어떤 고민을 하는지 적어봤습니다.
•
중요한 과학개념이 포함되어 있는가?
•
과학실에서 할 수 있는 실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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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분 안에 마무리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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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임승차의 가능성은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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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별력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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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시험을 본 학급이 더 유리하지는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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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등등 (그때그때 관심사에 따라 달라짐)
올해는 ‘평가할 내용에 대해 학습할 기회를 제공하였는가?’와 ‘적절한 피드백을 제공했는가?’라는 질문을 가운데에 두고 수행평가를 준비했던 것 같습니다.
그동안 제가 했던 실험 수업은 4인 1조나 2인 1조로 진행을 하게 되어 모든 학생에게 똑같이 실험도구를 다룰 기회를 주지 못했습니다. 또한, 30여 명이 동시에 실험을 하면서 정해진 시간 안에 유의미한 결과를 도출해야 하다 보니 모두에게 적절한 피드백을 해주는 데 한계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실험을 잘 따라오지 못하는 모둠에 붙어서 지도하다 보면 정신없이 한 시간이 지나갑니다. 결과가 잘 나와서 봐주지 않았던 모둠도 어쩌면 공부 잘하는 친구가 혼자 해버리고 다른 아이들은 그 친구가 불러주는 데이터만 받아 적었을지도 모릅니다. 설명할 때는 한 명도 안듣고 있다가 계속 선생님만 부르는 모둠부터 목소리 큰 독불장군이 멋대로 하다가 엉뚱한 결과가 나와 서로 싸우는 모둠까지 다양합니다. 한바탕 전쟁을 치르고 고민에 빠집니다. 나는 아이들에게 충분히 이 실험에 대해 학습할 기회를 제공한 것일까? 피드백을 제대로 해주었나? 모둠의 영향이 너무 크지 않을까? 이 상태로 다음 시간에 평가해도 될까?
수행평가 제대로 준비하는 기회 주기
이런 고민 끝에 1학기에는 ‘낙하하는 물체의 역학적 에너지 보존’ 수행평가에 앞서 2차시를 ‘수행평가 제대로 준비하기’로 할애하여 실험을 충분히 학습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로 했습니다. 우선, 실험을 진행하는 데 필요한 역할을 4개로 나누어 4인 1조로 돌아가면서 모든 역할을 한 번씩 연습해보도록 하고, 2시간 동안 해보면 대부분의 학생이 합격 수준에 도달할 것이라 예상하고 실험도구 조작능력은 평가항목에서 빼버렸습니다. (1명씩 개별적으로 평가하면 실험도구 조작능력을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겠지만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릴 것 같아서...) 대신 2차시 동안 실험을 하는 모습을 관찰하며 눈에 띄는 학생의 역량 메모해두었다가 나중에 세부능력 특기사항에 반영하는 것으로 했습니다.
<자유낙하 하는 물체의 역학적에너지 보존 4가지 역할>
1.
투명 플라스틱관에 속력측정기를 정해진 높이에 설치하고 들고 있기
2.
쇠구슬을 낙하시키고 속력측정기에 찍힌 속력 읽기
3.
데이터를 표로 정리하고 계산기를 이용하여 3회 평균 속력 구하기
4.
평균속력과 높이 이용해서 운동에너지와 위치에너지, 역학적에너지 계산하기
실제 수행평가 때는 교사의 시범 실험으로 데이터까지 제공하고 데이터 정리, 분석, 결론 도출하는 과정은 개별평가로 진행하였습니다. 데이터를 처리하는 과정(속력의 평균값과 역학적 에너지 계산)에 계산기가 필요했기 때문에 계산기를 학생 수만큼 구입하여 사전에 계산기 사용법도 익히도록 했습니다.
2학기에는 유전 단원에서 ‘멘델의 유전법칙 설명하기’를 수행평가 주제로 정했습니다. 유전 단원에서는 새로운 유전용어가 많이 나와서 학생들이 어려워합니다. 그래서 나만의 유전학 사전 만들기 활동을 하면서 먼저 유전용어랑 친해지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멘델의 유전법칙 중에 우열의 원리, 분리의 법칙은 3:1, 9:3:3:1이라는 비율만 외우고 왜 ‘우열’이고, 왜 ‘분리’인지에 대해서는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멘델의 실험과 유전법칙에 대해서 말로 설명하는 평가를 통해 정확하게 이해를 하고 있는지 평가하고자 했습니다.
‘수행평가 제대로 준비하기’ 활동으로 유전학 사전과 멘델의 실험에 관한 질문지를 만들고 모둠별로 1:3 질문 활동을 진행했습니다. 친구들에게 질문을 받고 대답을 하는 활동을 통해 잘못 알고 있었던 부분을 수정하기도 하고, 선생님 앞에서도 떨지 않고 이해한 내용을 조리 있게 말로 설명하는 연습을 하도록 안내했습니다.
▲ 나만의 유전학 사전을 보고 질문하며 답하기
▲ 엄선된 9가지 질문카드
▲ 1대3 면접으로 부족한 점을 서로 채워줌
‘독립의 법칙’은 말로 설명하기가 복잡할 것 같아서 퍼넷의 사각형을 직접 그리는 것으로 평가했습니다. ‘수행평가 제대로 준비하기’ 시간에 퍼넷의 사각형을 그려보도록 하고 완성하는 순으로 채점을 하여 개별적으로 피드백을 해주었습니다.
말하기 평가를 진행해보니 1인당 2분 정도 시간이 걸렸습니다. 학급당 60분 정도의 시간이 걸렸는데, 쉬는 시간과 다음 시간 선생님께 10분 정도 양해를 구했습니다. 생각보다 많이 떠는 아이들이 있어서 최대한 부드러운 분위기에서 진행하려고 했고 예상외로 유창하게 설명하는 학생, 잘할 것 같았는데 생각이 입에서 맴도는 학생 다양한 학생의 모습을 관찰했습니다. 유전 문제를 푸는데 필요한 기본 지식을 습득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수업?
1학기에 ‘에너지전환을 영상으로 표현하기’라는 문제를 모둠별로 해결하는 수업을 3차시(1차시는 콘티 만들기, 2차시는 영상 촬영하기, 3차시는 영상발표회)로 진행했습니다. 모둠은 2∼4명으로 자유롭게 편성하도록 했고 모둠을 만들지 못하고 남겨진 학생은 눈치, 코치 살펴서 교사 권한으로 모둠에 넣었습니다. 에너지전환이 흥미가 떨어지는 부분이어서 기획을 하게 되었는데 재미도 있었고, 평소 보지 못했던 아이들의 모습도 엿볼 수 있었습니다. 학생들은 영상 소재를 찾는 과정에서 다양한 에너지전환의 예를 찾아내고 과학적으로 오류가 없는지 의논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콘티를 피드백하면서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오개념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영상을 제작하면서 각자의 역량(창의적 사고, 심미적 감성, 의사소통)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첫 시간에 영상을 만들자고 하자 아이들은 일제히 비명을 질렀습니다. 이미 다른 과목 수행평가로 영상 만들기를 하고 있었는데 그 수행평가가 힘이 들었었던 모양입니다. “우선 수행평가 아니고 서로 잘 맞는 친구들이랑 같이 모둠으로 할 거고 특별한 제한은 없다. 단, 콘티를 만들어서 너희들이 생각한 에너지전환이 과학적으로 맞는 것인지는 선생님에게 체크를 받아야 한다. 완성되면 다 같이 결과물을 보면서 서로를 평가해보는 시간도 가질 거야. 숙제는 없고 모든 활동을 수업시간 안에 끝낼 계획이니 부담 갖지 말고 즐깁시다.”라고 했더니 안도의 한숨을 쉬며 자리에서 일어나 시끌벅적 모둠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수행평가는 아니었지만, 평가기준(에너지의 전환이 일어났는가?, 얼마나 다양한 에너지가 등장하는가?, 스토리가 있는가?, 영상미가 있는가?)을 제시하여 내용 지식을 영사에 담아내려고 했고, 투표를 통해 영상의 스토리와 영상미에 대한 평가를 반영하고자 했습니다.
▲ 1차시: 콘티 만들기
▲ 2차시: 영상 촬영하기
수행평가를 가정하고 평가기준안을 만들어봤습니다.
‘이 평가기준안으로 아이들의 역량을 평가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해보았을 때, 수업의 각 단계별 수행 여부에 대한 확인은 가능하나 발휘한 역량의 수준을 점수화하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학급 투표결과나 수행과정, 결과물을 통해 관찰한 부분은 메모해두었다가 특기 사항에 적는 정도가 최선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수업 시간을 통해 학습한 것을 평가했느냐? 과학 교과 성취 수준이 반영되었는가? 무엇보다 왜 영상을 만들었을까? 라는 근본적인 고민이 생깁니다. 다음에는 ‘에너지의 전환’ 개념 자체에 포인트를 두기보다는 ‘에너지’와 관련된 문제를 찾아내고 그 문제를 해결하는 q방법의 하나로 영상 제작이 들어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겨울방학 때에는 평가 연수를 신청해야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두서없는 글을 마치겠습니다.
강신영
마법 같은 수업을 만들고 싶은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