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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리더십으로 함께 성장하기

교사 리더십으로 함께 성장하기

박종호(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 국어 교사)
“이야기 된 불행은 불행이 아니다.
그러므로 행복이 설 자리가 생긴다.” -이성복
나무학교 식구 여러분 안녕하신가요. 여름의 시작과 끝을 각자의 위치에서 함께 하고 있을 것을 생각하며, 고마운 마음을 담아 글을 씁니다. 오늘 제가 여러분에게 소개할 글은 여름 워크숍 후기입니다. 7월 13, 14일에 진행한 워크숍의 주제는 ‘교사 리더십으로 함께 성장하기’였습니다. 교사 리더십이란 무엇일까요? 또 교사 리더십은 왜 필요할까요? 워크숍을 준비하며 고민한 끝에 우리는 사람의 마음을 어떻게 헤아릴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사람을 안다는 것(데이비드 브룩스)’을 읽고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함께 고민하고자 마음을 모았습니다. 이에 책에 나오는 핵심 개념인 ‘일루미네이터(타인을 존중하고 성장을 유도하는 사람)’와 ‘디미니셔(타인을 무시하고 모욕을 주는 사람)’를 알아보고 사람의 마음을 얻는 방법에 대해 공부했습니다. 아래는 토의와 모임 끝에 마련한 일정표입니다. 일정표에 맞게 각 활동에 참여한 소감을 소개하겠습니다.

공동체 놀이

여는 활동은 ‘공동체 놀이’였습니다. 먼저 ‘도미노 박수’는 동그랗게 앉아, 박수를 빠르게 치는 놀이였습니다. 처음 시작한 선생님부터 마지막 선생님까지 최대한 빠르게 박수를 치는 것이었는데요. 박수 소리가 겹치면 안 되기에 앞선 선생님의 박수 소리를 긴장된 마음으로 기다렸습니다.
이어 ‘손님 모셔 오기’ 활동을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동그랗게 앉아서 진행했습니다. 동그랗게 이어진 의자 중 한 자리를 비워둔 뒤, 양옆 두 사람이 빈자리에 손님을 데리고 오는 활동이었습니다. 다른 자리에서 손님을 데리고 오면 또 빈자리가 생기기 때문에, 양옆 사람이 다시 다른 손님을 모셔 오기를 반복하는 놀이였습니다.
과일 바구니 활동
다음으로 과일 바구니 활동도 했습니다. 활동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각각 복숭아, 참외, 수박 등 과일 이름을 붙이고 술래를 한 명 뽑습니다. 술래가 앉아 있는 사람에게 ‘무슨 과일 좋아해?’라고 물으면, 좋아하는 과일의 이름을 말하는 놀이였습니다. 앉아 있는 사람이 외친 과일에 해당하는 사람은 모두 일어나 다른 자리로 가서 앉아야 합니다. 이게 첫 번째 단계였지요. 이어서 음료수 이름도 각각 선생님들께 배당되었습니다. 이제 과일과 음료 두 개의 이름을 갖게 된 선생님들은 자기 과일과 음료수가 불리면 이리저리 자리를 이동했습니다. 그러다 ‘화채’라고 말하면 모든 선생님들이 자리를 이동해야 합니다. 마지막 단계는 타인을 알아갈 수 있는 질문을 곁들여 과일을 불렀습니다. 이를테면 술래가 된 선생님이 ‘이번 학기에 학생과 다투어 본 적 있는 과일을 찾습니다.’라고 외치면 그런 경험을 가진 선생님이 자리를 옮기는 활동이었지요. 내면을 묻는 질문을 곁들이니 활동에 몰입감이 생겼습니다. 다른 이들에게 궁금증을 가지는 시간은 그 자체로 다가가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저는 술래가 될까 싶어 ‘첫사랑이 꿈에 나온 적이 있는 과일, 문학을 좋아하는 과일, 겨울을 좋아하는 과일.’ 무수한 질문을 떠올렸다 지웠다 반복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서로 손을 엇갈라서 잡고, 손을 놓지 않고 매듭을 푸는 활동도 했습니다. 매듭이 하나둘 풀리며 서로 미소를 지어주기도 했습니다. 학급 활동으로 사용한다면 서로 간의 연결성을 손끝으로 느낄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SNS나 유튜브 등 다양한 플랫폼들이 나날이 타인과 접촉하며 마주하는 시간을 잠식해 오고 있는 듯합니다. 이러한 시간은 어쩌면 쓸모없어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쓸데없이 재미있는 것들이 기억이 됩니다. 쓸모없는 시간들이 삶 속에 축적되어 에너지가 되는 것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손 매듭 풀기 활동

감정 공감 놀이 보드게임

이어서 감정 공감 놀이 보드게임을 했습니다. 감정을 높은 에너지, 낮은 에너지, 쾌적함과 불쾌함, 네 영역으로 나누고 정도에 따라 감정에 이름을 붙인 감정보드판을 참고해 게임을 시작했습니다.
감정 공감 보드게임 설명
우선 우리의 경험에 감정의 이름을 붙이는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긍정적이었던 경험 네 가지, 부정적이었던 경험 네 가지를 적고, 그때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적은 종이를 가운데 모았습니다. 활동을 하며 제가 감정을 마주할 때 얼마나 투박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저는 좋으면 그저 ‘좋음’, 나쁘면 그저 ‘나쁨’이라고 뭉뚱그려 표현했습니다.
바쁘다는 말의 한자어 망(忙)을 파자하면, ‘마음이 훼손된’ 혹은 ‘마음이 없는 상태’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제 삶을 돌이켜 보면서 마음 없이 그저 반복되는 일상을 지내온 듯합니다. 방향성 없는 반복은 곧 마모입니다. 저도 얼마간 마모된 마음을 꺼내 놓으면서 어색함과 마주했습니다.
긍정적 경험을 네 가지 쓰며 저는 소중한 사람에게 위로 받았을 때를 떠올렸습니다. 그때의 경험은 어떤 감정으로 이름 붙일 수 있을까? 든든함. 힘이 나는. 편안한. 이름 붙이려니 감정들을 칼로 자르듯 분간할 수는 없지만, 감정에도 채도와 명도가 있는 듯했습니다. 밝아지기도, 어두워지기도, 진해지기도, 연해지기도 하는 감정들로 경험의 이름을 붙이는 시간이 귀하게 느껴졌습니다.
이어서 다른 선생님의 경험을 듣고, 그때의 감정을 맞추는 활동을 했습니다. 어려웠던 기억을 이야기하고, 옆 선생님들께서 ‘쓸쓸했나요?’, ‘고독했나요?’ 등을 여쭈어보았습니다.
경험을 적고 감정 고르는 활동
맞추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감정에 대한 생각들이 모두 다르고, 경험의 무게에 대해서도 서로 달랐습니다. 측정할 수 없는 무엇인가를 두고, 통일할 수 없는 무엇인가를 두고 이렇듯 추리 게임을 펼치는 게 즐거웠습니다.
가끔 학생들이 찾아와 상담을 합니다. 그러면 각자의 어려운 일들을 얘기합니다. 그때 저는 몇 가지의 감정으로 학생의 경험에 이름 붙이는 교사는 아니었을는지 반성해 봅니다. 정답이 없는 활동이 가치를 갖는 이유는 정답이 없기 때문입니다. 감정을 헤아리는 데서는 순환 논증의 오류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나아가 교육 공동체들의 마음도 기다림을 통해 보듬어 지길 소망해 봅니다.

몸과 마음을 깨우는 경청 공감 놀이

신뢰 서클, 책 대화 시간에는 서로 동그랗게 앉아 서로의 이야기를 편안한 가운데서 주고받는 시간이었습니다. 진행하시는 선생님께서 ‘지금 하는 이야기는 이 공간에 두고 가야 해요’라는 말에 든든함을 느끼셨는지 선생님들께서 이야기를 하나씩 털어놓으셨습니다.
먼저 자신이 만난 일루미네이터와 디미니셔에 대해 짝과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관계의 질이 삶의 질입니다. 어떤 사람과 어떤 관계를 만들어 살아가느냐에 따라 채워지는 삶의 경험들이 달라지기 때문이겠지요.
주체적으로 관계를 만들어 가면 좋으련만, 안타깝게도 관계라는 것은 주체성과 더불어 우연성에 의해서도 좌우됩니다. 저는 지금도 친하게 지내고 싶은 친구, 선생님들이 있습니다. 주체적으로 관계를 만들어 나가고자, 늘 애쓰고 있지요. 그러나 내가 애쓴 관계라 해서 모든 사람들과 연결된 것은 아닙니다. 시간이 흐르고 멀리 바라보면 남아 있는 관계는 대부분 우연이었음을 실감합니다. 마찬가지로 일루미네이터만 두고 싶겠지만, 그럴 수 없습니다. 일루미네이터든 디미니셔든 모든 사람들이 내 삶의 요소가 되는 것이겠지요. 받아들임에서 시작해 자신의 감정을 보듬는 것이 필요한 것이겠습니다.
그래서 이번 시간은 관계에 대한 고민을 보듬는 귀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내가 우연으로 만난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리고, 그때의 감정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이성부 시인이 말한 ‘행복의 자리’를 마련하는 행위가 되었습니다.
지금의 나를 만든 주위 사람을 떠올리는 일은 나를 마주하는 일이 되었습니다. 가정 폭력에 노출되었던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서 가정 폭력을 주체가 되는 경우가 많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었습니다. 과거는 은근하게 우리의 행동을 가둡니다. 디미니셔를 떠올리며, 과연 나는 그러한 행동을 타인에게 하고 있지는 않는지 고민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성찰은 후퇴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성찰은 진보입니다. 반복하지 않으려면 스스로를 직면해야 하지요.
디미니셔를 떠올리며 이야기했지만, 디미니셔가 원망스럽다는 느낌에서 자유로워졌습니다. ‘반면교사’라는 말이 있듯이, 내가 어려움을 겪었던 행위를 재생산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교육 공동체는 조금더 밝아질 수 있는 것이니까요. 삶을 돌아보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 ‘퍼펙트 데이’라는 독립영화를 본 지인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지금은 지금, 다음은 다음’. 가끔은 거대한 담론보다, 내 삶에서 출발한 이런 사소한 성찰이 교육을 변화시킵니다.
짝 대화에 이어 서클 대화로 넘어갔습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모든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했습니다. 신기하게도 디미니셔의 모습은 다른 탈을 했지만, 그 본질이 같았습니다. 자신의 경험과 생각으로 타인의 경험과 생각을 함부로 판단하고 재단하는 사람. 저는 백수린 작가는 ‘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이라는 책에서 이야기합니다. 슬픔은 섬세하고 개별적인 감정이라고요. 그래서 함부로 포갤 수 없는 감정이라고 합니다. 기뻐하는 친구들 곁에서 ‘아. 나도 그랬어. 그거 정말 재밌었어.’라고 편히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슬퍼하는 친구들에게 가서 ‘아. 나도 그랬어. 힘내’라고 쉽게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슬픔은 타인에게 더욱 다가가는 감정이 되는 것이겠죠. 디미니셔는 그런 사람입니다. 슬픔에 함부로 겹치려고 하는 사람. 타인의 감정을 자신의 경험과 상식으로 함부로 포개려 드는 무례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그 자리에서 감정을 터놓고, 서로 공감하면서 위로받은 듯합니다. ‘슬픔이 슬픔을 구원한다.’라는 은유 작가의 말이 생각납니다. 우리가 관계를 마음대로 만들 수는 없지만, 누군가를 위로할 수 있는 힘은 배울 수 있습니다. 나무학교에서 내 마음을 누군가에게 기댈 수 있음은, 또 누군가에게 기댈 공간을 줄 수 있음은 따듯함을 안겨주었습니다.
책갈피 선물 활동
이어서 서클 가운데에 놓인 카드 중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 그림이 왜 마음을 사로잡았는지 일대일로 설명하며 전달하는 활동을 했습니다. 저는 모래시계 한 쌍이 그려진 그림을 골랐습니다. 같은 속도로 모래 알갱이가 내려가고 있는 그림을 보며, 함께 속도를 맞춰갈 수 있는 사람이 떠올라서 좋다고 했지요. 그렇게 제 이야기가 여러 선생님들 통해 퍼져 갔습니다.
이어서 다시 동그랗게 모여 앉아, 처음에 설명했던 말이 끝 사람에게 가서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확인했습니다. 몇몇 이야기들은 전달되는 과정에서 본질이 변하기도 하고, 또 화려하게 덧붙여지기도 하고, 생략, 축소되기도 했습니다. 제 이야기는 더 예쁘게 덧그려졌습니다. 좋은 이야기도 이렇듯 사람들의 입을 통해 변하는데, 좋은 말만 하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안 좋은 이야기는 얼마나 그 몸집을 불려서, 사람을 괴롭히게 될지를 떠올리며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활동을 정리하며 책갈피를 선물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책갈피는 ‘사람을 안다는 것’에 나오는 구절을 예쁘게 오려서 코팅한 것이었지요. 자신이 고른 책갈피의 구절을 보고, 가장 선물하고 싶은 선생님께 드리는 활동이었습니다. 저도 선물을 받았고, 짧은 글귀에 위안을 얻었습니다. 책을 읽고 함께 한 활동이었으나, 살아있는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나눔 활동

일루미네이터 나누기 활동
다음날은 ‘내가 일루미네이터, 디미니셔’였던 경험 나누기였습니다. 디미니셔였던 경험을 익명으로 나누며, 누구나 한 번쯤은 디미니셔가 되었을 수 있다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되돌아보는 것은 퇴보가 아니라, 그 자체로 나아감이라는 것도 압니다. 저 또한 학생들과 선생님들, 그리고 주위 사람들에게 험한 말들을 쏟아내었던 순간들이 있었지요.
저는 디미니셔인가, 훈육자인가 고민해 보았습니다. 훈육의 영역에서 분명 잔소리해야 하는 경우들도 있다고 저는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저의 부모님은 잔소리꾼이십니다. 그러나 그걸 이해할 수 있지요. 언어로 따지면 디미니셔의 언어들을 구사하시지만, 저는 부모님을 디미니셔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훈육자셨지요.
제 마음을 진솔하게 표현하니 선생님들께서도 진솔하게 경험을 적어 내셨습니다. 그중 다른 선생님을 위해 간식과 탕비실 공간 정리를 도맡아 하신 선생님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영혼은 행위란다.(’햇봄, 간빙기의 순진보살, 김선우)’라는 말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를 아끼는 것은 글말, 입말, 몸말이 조화를 이루어야 하지요. 입말을 몸말이 감싸지 않는다면 ‘사랑’이라는 것은 실체를 잃습니다. 사랑에 실체를 부여하는 것이 몸말, 즉 실천이겠지요.
그렇기에 저는 실천을 의미하는 행위를 중시하는 사람입니다. 제 주위 사람들에게도 ‘사랑’이라는 표현은 잘 하지 않습니다. 다만 좋아한다는 말이나, 존경한다는 말. 고맙다는 말. 함께 있으면 편안하다는 말 등으로 대체하지요. 사랑이라는 말은 제게 무겁습니다. 몸말이 받침되지 않을까 두렵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선생님의 실천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졌던 듯합니다. 나무학교에서는 배울 점이 이렇듯 사소한 것에서 갑작스레 찾아옵니다. 배움으로 열린 공간은 따듯한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워크숍을 준비하면서 주말 아침부터 공주까지 음료와 간식과 음식 재료 등을 준비해 주신 선생님, 연수 내용을 알차게 기획하기 위해서 회의하고 준비물을 챙겨 주신 선생님, 작은 위로를 얻을 수 있을까 하여 손수 코팅하고 글귀를 하나하나 간추리신 선생님. 모든 선생님들이 행위로서 제게 가르침을 주십니다.
‘어른에게도 어른이 필요해’. ‘나의 덴마크 선생님’의 저자 정혜선 선생님이 우리 학교에 강의하러 오셔서 하셨던 말씀입니다. 선생님에게도 선생님이 필요합니다. 나무학교의 선생님들은 제게 선생님입니다. 저는 나무학교에서 위로받고 응원받으면서 이 더운 여름을 지혜롭게 나고 있는 듯합니다. 선생님들의 귀한 이야기들을 함께 나누며 계절 속에 선생님들과 같이 익어갈 수 있음에 기쁩니다. 다음 워크숍도 기대하며 글을 마무리합니다. 고맙습니다.
박종호(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 국어 교사)
우리가 있기에 내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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