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소리 읽기
home
최신호 읽기
😍

함께 학교 가는 길, 프로젝트 수업 도전기

함께 학교 가는 길, 프로젝트 수업 도전기

김승한(도고온천초등학교 교사)

1. 학교 가는 길

매일 학교 가는 길 학교 앞 길목엔 나를 기다리는 친구 있어서 행복한 하루 되네. 함께 학교 가자하며 기다리네. 아침 햇살 환히 비치는 교문 앞 피어 있는 꽃들이 나를 반기네. (학교 가는 길, 김광민 작곡, 김두석 작사)
아침부터 시간표를 확인하며 한숨 쉬는 학생들이 보인다. 수학, 국어, 사회 저마다 한숨을 쉬는 이유는 다르지만, 오늘 시간표에 마음에 들지 않는 과목이 눈에 들어오나 보다. “아. 수학 2시간”이라며 괴로움을 토로하는 학생도 보인다. 한숨을 쉬는 학생들과 오늘 수업할 내용을 살펴보는 선생님 모두 학교 가는 길보다 집 가는 길이 더 행복할 것 같다.
그렇다고 학생들이 수업 시간에 항상 힘들어하는 건 아니다. 학생들도 나름 애쓰며 친구들과 즐겁게 수업에 참여한다. 나 역시 ‘어떻게 하면 재밌고 쉽게 수업 내용을 전달할 수 있을까?’ 생각하며 수업을 준비해 학생들과 하루를 보낸다.
다만, 의문이 들 때가 있다. ‘학생들이 차시, 단원, 교과 내용을 배웠지만 각 차시와 단원, 교과를 연결하며 역량을 발휘할 수 있을까?’ ‘오늘 배운 성취기준을 학생들이 실생활에서 활용할 수 있을까?’, ‘주어진 내용을 수동적으로 배우는 수업이 기억에 남을까?’

가. 프로젝트 수업, 문을 두드리다.

나의 고민은 교육과정 재구성을 거쳐 프로젝트 수업으로 이어졌다. 단순한 교육과정 재구성만으로는 모든 의문을 해결할 수 없었다. ‘학습 내용이 실제 생활과 연결되고 단원, 교과 등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수업, 학생들이 눈을 반짝이며 스스로 움직이는 수업’을 하고 싶었다.
프로젝트 학습이 고민 해결에 도움이 되었다. 나는 연수를 듣고, 책을 읽고 ‘나무학교 소모임 PBL센터’ 선생님들과 함께 공부하며 프로젝트 수업에 도전했다.

나. 학생 주도성

프로젝트 학습(Project Based Learning)은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이 정의할 수 있다.
PBL은 계획과 설계, 문제해결, 의사결정, 결과물의 창출과 공유 같은 복잡한 여러 과업의 집합체로 정의할 수 있다.(Mergendoller, Markham, Ravitz, & Larmer, 2006). 마이클 멕도웰(2019), 『프로젝트 수업 제대로 하기』, 지식 프레임
조금 더 풀어서 이야기하면, 프로젝트 학습은 학습자가 해결하기 어려운 실제적인 문제를 협력적인 과정을 통해 해결한다. 학습자는 자기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역량과 지식을 맥락 있게 배우게 된다. 특히, 학습 과정에서 학습자가 주도성을 발휘할 수 있다.
『학생 주도성』의 저자 Margaret Vaughn은 학생 주도성을 다음과 같이 세 가지 주요 범주로 제시하였다.
<표 > 주도성의 내적 차원들
프로젝트 수업은 학생 주도성의 다양한 차원을 포괄할 수 있다. 학생들이 의미 있는 목표를 향해 자기 아이디어에 따라 행동할 수 있도록 한다. 자신의 목표를 향해 의지를 가지도록 독려하고(목적, 지향성), 학생들이 배우고 싶은 내용을 반영하여 과제를 끝까지 완수할 수 있도록 한다(지각, 끈기). 그리고 학생들이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 있도록 교실 환경, 규칙 등을 허용적으로 바꿔야 한다(상호작용, 협상).
내가 생각하는 학생 주도성 역시 ‘학생 개인이 의지와 끈기를 가지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개인 차원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학생들이 자신의 목표를 발견할 수 있도록, 자신의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어떻게 어려움을 극복해야 할지, 복잡한 사회와 관계 속에서 어떻게 생활할지 배우는 것의 총체라고 생각한다.

2. 경험은 좋은 선생님이다.

가. 망한 프로젝트

경험은 좋은 선생님이다. 프로젝트 수업을 하며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다. 특히, 학생 주도성 측면에서 어려움을 겪었던 수업은 인권 토론 프로젝트이다. 인권 토론 프로젝트는 기후 위기와 인권과의 관련성, 기후 위기의 심각성 등을 배우고 이에 대해 공개 토론회를 하는 프로젝트였다. 당시 학생들 표정이 기억난다. 한두 명의 학생을 제외하고는 ‘배워야 하니까 하나보다’ 하는 멍한 얼굴이었다. 학생들은 어두운 표정이거나 관심이 없었다.
학습자가 주도적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할 동력을 잃었던 수업이었다. 일단 학습자에게 어려웠다. 프로젝트 수업의 핵심 요소 중 하나는 ‘어려운 문제와 질문’이다. 이때 ‘어려움’은 학생들에게 너무 어렵지도 않고 너무 쉽지도 않는 딱 맞는 수준을 의미한다. 하지만, 인권 토론 프로젝트에서 ‘어려운 문제와 질문’은 학습자 수준을 많이 벗어난 것 같다. 프로젝트 탐구 질문이 ‘우리가 토론을 통해 기후 위기로 인한 인권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였다. 격식을 갖춘 공식적인 토론 형태가 낯설었던 초등학교 5학년 학생들이었다. 토론도 토론이지만 기후 위기와 인권을 함께 생각하고 근거를 찾는 것도 쉽지 않았다.
<표 > 인권 토론 프로젝트 개요
프로젝트를 계획할 때, 너무 단순하게 생각했다. 막연히 기후 위기 문제는 어린 학생들이 더 오래 지구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실제적인 수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뒤늦게 참모진 토론(참모진 토론은 근거자료를 정리하고 발언을 도와주는 역할을 맡은 학생(참모)이 있는 토론이다. 발언에 부담이 있는 학생들도 참모로 토론에 참여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등 원활한 토론을 위한 비계(Scaffolding)를 제공하고, 토론 주제도 ‘만약 도고면에서 미래를 위한 금요일 시위(스웨덴의 환경운동가인 그레타 툰베리가 15세에 기후변화에 대한 심각성을 느끼고 기후변화 법안 마련 촉구를 위해 금요일마다 학교에 결석하며 시위를 시작했다. 이후 시위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가 열리면 참가할 것인가요?’처럼 내 생활에 밀접하게 다가올 수 있도록 바꾸었다. 하지만 학습자가 적극적으로 프로젝트에 참여하지 못했다. ‘기후 위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까요?’, ‘누구의 책임일까요?’ 등 교사의 질문에도 학생들은 적극적으로 답하지 못했다. 결국 교사가 힘들게 프로젝트를 끌고 나가야 했다.
▲ 공개 토론회
▲ 주장 및 근거 정리하기

나. 만족한 프로젝트

반대로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는 자매결연 프로젝트이다.
현재 재직하고 있는 도고온천초등학교는 충남 아산시 외곽에 있는 작은 학교이다. 한 학년에 한 반만 있어서 학생들이 같은 반으로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다. 서로 잘 아는 장점도 있지만, 역동성이 떨어진다. 관계도 비교적 고정되어 있고 소통하는 방식, 공부하는 방법 등 새로운 자극을 받으며 성장하는데 아쉬움이 있다. 그래서 다른 학교와 지역교류를 추진하였다. ‘실천교사 교육모임’에서 해마다 학기 초에 지역교류 수업을 원하는 학급을 모집한다. 지역교류사업을 통해 서울에 있는 미래초등학교 5학년과 연결되었다.
이후 서울 미래초 선생님과 협의하여 수업을 구상하였고, 미래초에서 먼저 학교를 소개하는 영상과 자기소개서를 보냈다.
미래초의 학교 소개 영상을 시청한 후, ‘우리가 미래초 친구들과 교류하며 친구를 잘 사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탐구 질문을 소개하였다. 이 탐구 질문은 1년 동안 미래초 친구들과 교류하며 함께 해결할 탐구 질문이었다. 학생들은 다른 학교와 교류하는 상황 자체를 흥미로워했고 앞으로 어떻게 교류할지 궁금해했다.
일단 서로 소개하고 인사하는 과정이 필요했기에 ‘우리가 미래초 친구들에게 우리 학교와 나를 어떻게 소개하면 좋을까’라는 후속 탐구 질문을 추가로 논의하였다. 학생들은 미래초처럼 우리 학교를 촬영하고 편집하여 소개하는 영상을 만들고 싶어 했다. 그래서 학교를 소개하는 영상을 만들고, 나를 소개하는 편지를 써서 보내는 것으로 1학기 프로젝트 수업의 방향을 정하였다.
이 중 편지 쓰기는 학생들이 원한 것은 아니었다. 학생들은 바로 전화번호를 주고받고 SNS로 연락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학생들이 편지를 주고받는 과정을 온전히 느꼈으면 했다. 편지를 보내고 기다리는 과정, 다음에 편지 쓸 때 무슨 말을 쓸지 생각하는 과정 등 느리지만 더 연결감을 느낄 수 있었으면 했다. 당연히 [6국03-01] 쓰기의 성취기준도 실제적인 과정을 통해 달성했으면 했다.
<표 > 1학기 자매결연 프로젝트 개요
모든 과정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 어떤 수업보다 학생들의 표정은 밝았다. 적극적으로 ‘우리 학교를 어떻게 소개하면 좋을지’, ‘어떤 내용을 편지에 쓰면 좋을지’ 고민했다.
우리 학교에서 소개하고 싶은 곳을 브레인스토밍할 때, 다양한 아이디어가 나왔다.
학생A: “우리 학교 급식 맛있잖아”,
학생B: “그렇지만 그걸 소개하기엔 노잼이지 않을까?”
학생C: “실내 놀이터는 어때?”
웃으면서 팀끼리 소개하고 싶은 장소를 찾고 있었지만, 마냥 장난스럽지 않았다. 진지했다. 정말로 우리 학교에서 매력적인 곳을 소개하고 싶어 했다.
영상을 촬영하고 편집하는 과정 역시 쉽지 않았지만 적극적이었다. 어떤 장소에서, 어떤 구도로, 어떤 말을 하면 좋을지 적극적으로 의견을 냈다. 실제 영화나 광고 촬영 현장에서도 시간이 무한정 있지 않다. 학생들도 제한된 시간 안에서 효율적으로 촬영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편집하는 과정도 마찬가지였다. 기본적인 편집 방법을 배우고 팀원들과 상의하며 필요 없는 장면을 삭제하고 소리를 조정하고 자막을 만들었다. 팀원들 간에 의견이 맞지 않기도 하고 뜻대로 되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좌절하지 않고 선생님에게, 팀원들에게 물어보며 문제를 해결했다.
편지 쓰는 과정에서도 편지 시작은 보통 어떻게 하는지, 편지의 형식부터 시작해서 어떤 말을 써야 하는지 고민했다.
이 모든 과정은 수업 시간에 한정되지 않았다. 학생들은 스스로 쉬는 시간에 미래초에서 온 자기소개서를 한 번 더 보기도 했다. 친구들과 선생님의 피드백을 반영하여 더 좋은 결과물을 만들려고 노력했다.
▲ 학급 게시판 아이디어 찾기
▲ 영상 촬영
▲ 우리 학교 소개 영상
▲영상과 편지를 보낸 후 받은 답장
이후, 2학기에 후속 질문(‘우리가 패션코디네이터가 되어 친구들에게 옷을 추천해 줄 수 있을까?)’을 해결하는 자매결연 프로젝트 수업을 이어서 진행하였다.
<표 > 2학기 자매결연 프로젝트 개요
학생들은 자매결연 프로젝트 수업 내내 표정이 밝았고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어려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았다. 질문했다. 프로젝트 수업 시간을 기다렸다. 편지는 언제 또 쓰는지, 편지는 언제 오는지, 다음 화상수업은 언제 하는지 기대했다.
▲ 화상수업 후 소감(도고온천초 학생 중)
▲소감(미래초 학생 중)

다. 성찰하기

학생들의 반짝이는 눈, 결과물이 나왔을 때 기쁨, 축하하기 단계에서 함께 느끼는 뿌듯함. 프로젝트 수업은 매력적이다. 무엇보다 교사 혼자 하는 수업이 아니라 학생과 함께 할 수 있는 수업이다. 하지만 앞선 두 개의 프로젝트 수업은 학생 주도성 측면에서 차이가 있었다.
첫째, 해결할 문제에서 차이가 있었다. 인권 토론 프로젝트는 학습자 수준을 벗어난 문제상황이 주어졌다. 실제적이지 않았고 어려웠다. 보통 초등학교 6학년이 되어야 우리나라를 벗어나 세계의 자연환경이나 인문환경 등을 접하게 된다. 인권과 전세계적인 기후 문제를 연결 짓고, 공개 토론회 자리에서 토론까지 하기는 어렵다. 너무 어렵다. 이에 반해 자매결연 프로젝트는 해결할 문제가 매력적이고 실제적이었다. 학습자가 고정된 친구 관계를 넘어 자기 또래의 다른 지역 친구와 소통하는 기회였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충분히 도전할 만한 어려운 문제다. 다른 지역 친구와 교류하며 친구를 잘 사귀고 싶지 ‘않은’ 학생이 얼마나 있을까?
둘째, 학생의 의사와 선택권에서 차이가 있었다. 인권 토론 프로젝트는 교사가 욕심을 부렸다. 혁신학교 공개수업 때 ‘공개적으로 결과물을 발표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있다’라는 생각이 강했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내내 교사가 미리 구상한 틀 속에서 학생들은 의사와 선택권을 낼 여유가 없었다. 학생들이 흥미와 관심을 잃고 나와 관련되어 있지 않다고 느끼는 순간(아무 선택권도 없이 끌려가야 하는) 프로젝트 수업은 방향을 잃었다.
자매결연 프로젝트는 교육과정 성취기준을 고려하면서도 학생의 의사와 선택권을 반영하였다. 학생들이 미래초등학교 친구들처럼 우리 학교를 소개할 때 영상으로 소개하고 싶어 한다는 점, 학생들이 영상 매체에 익숙하고 영상 편집을 배워보고 싶어 한다는 점, 이후 화상수업을 통해 매칭된 친구를 만나고 싶어 한다는 점 등 사소한 부분일 수 있다. 하지만 학생들은 정말로 ‘우리’의 프로젝트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적극적인 참여는 지속적인 탐구를 가능하게 했고, 성찰, 비평과 개선, 결과물을 공개하는 순간에도 주도적인 학생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3. 함께 학교 가는 길

마지막으로, 학습자 주도성이 발현되는 프로젝트의 밑바탕에는 학생들이 자기 생각을 안전하고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안정적인 공동체가 있어야 한다. 아무리 실제적인 문제가 있고, 매력적인 탐구 질문이 있어도 ‘어차피 내 의견을 말해봐야 소용없어’ 또는 ‘내가 말하면 누가 나를 뭐라고 하지 않을까?’라는 분위기 속에서는 학생 주도성이 나올 수 없다.
학기 초 또는 프로젝트 수업 초반에 신경 써서 긍정적이고 안정적인 공동체를 만들려고 노력하는 이유다. 함께 학급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우리 반이 가고 싶은 방향과 목적지를 이야기 나눈다. 올바른 의사소통 기술을 연습하고, 주기적으로 학급 회의를 하며 학급의 문제를 해결한다. 프로젝트 팀끼리 약속을 정하고 역할을 나눈다.
어떤 수업을 하든 시행착오를 겪는다. 그렇지만 어떤 수업을 하든 앞으로 ‘함께’ 학교 가는 길이 되면 좋겠다. 함께 학교 가며 학생들이 공동체 속에서 ‘학생 주도성’을 발휘하며 성장하는 모습을 그려본다. 그 속에서 교사로서 학생들이 무엇에 관심 있는지 주의를 기울이고, 적절한 시기에 필요한 것을 지원하며 무엇보다 자유롭고 안정적인 공동체를 만들어 성공과 실패를 경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다.
<참고 문헌>
마이클 멕도웰(2019), 프로젝트 수업 제대로 하기, 지식프레임
박재찬(2019), 달리쌤의 달콤한 프로젝트 수업 PBL, 테크빌 교육
Margaret Vaughn(2023). 학생 주도성, 학지사
벅교육협회(2021), 처음 시작하는 PBL, 지식프레임
김승한(도고온천초등학교 교사)
늘 탐구하며, 이타적이고 자유로운 공동체를 만들고 싶은 교사입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