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학교 인터뷰_교사의 기록
정윤희(천안두정고 일본어 교사)
매년 새해가 되면 나의 소중한 일상을 기록으로 남기고자 다이어리를 구입했던 경험, 다들 있으신가요? 인상 깊게 읽은 소설의 글귀, 문득 떠오른 수업 아이디어,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영화 등 ‘기록’으로 남기고 싶은 우리의 일상 속 소중한 순간들은 어디에 기록되고 있을까요. ‘언젠간 정리해야지’하고 쌓아두기만 한 컴퓨터 바탕화면 파일들처럼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기록들을 한데 모아 주제별로 분류하고 정리하고 싶은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 같습니다. ‘기록과 정리’에 대한 필요성은 늘 느끼지만 좀처럼 실행으로 옮기지 못하는 선생님들을 위해 ‘기록의 습관화’를 실천하고 계시는 두 분의 선생님을 모시고 즐거운 서면 인터뷰를 진행해 보았습니다.
박준일 선생님(온양여고 국어교사)
▷ 숲소리 구독자들을 위해 짧게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숲소리 구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온양여자고등학교 국어 교사 박준일입니다. 저는 이것저것 배우는 걸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제가 요즘 관심 있는 건 기후위기, 노동인권, 미디어리터러시, PBL, 글쓰기, 저널리즘, 영상편집, 교사학습공동체, 그림책, 스쿠버다이빙, 가족입니다.
▷ 현재 사용하고 계신 기록 매체에 관해 소개해 주신다면?
노션(Notion)은 일의 생산성을 높이는 올인원(all-in-One) 워크스페이스 앱입니다. 노션 하나만 있으면 일정 관리, 프로젝트 관리, 협업, 홈페이지 제작, 문서 작업, 기사 스크랩, 아카이브 제작 등등 일을 하는 데 필요한 거의 모든 작업을 할 수 있습니다. 노션을 만든 사람들은 미국 샌프란시스코 베이스의 작은 팀인데요, 노션 홈페이지에 공개된 왜 노션을 개발했는지에 대한 설명을 보면 노션이 어떤 프로그램인지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노션 홈페이지 첫 화면
<노션 홈페이지에 소개된 노션의 미션(Misson)>
“우리는 사람들이 최선의 사고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도구를 만듭니다. 인간은 도구 제작자이지만, 우리 대부분은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소프트웨어를 수정할 기술이 없습니다. 우리는 일을 할 때 너무 많은 애플리케이션을 활용하는 반면, 극소의 애플리케이션만이 우리가 원하는 대로 작동합니다. 우리의 목표는 메모, 문서, 작업, 데이터베이스 등 생산성의 기본 요소를 새롭고 창조적인 방식으로 결합할 수 있는 유연성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최상의 도구를 제공함으로써 전 세계의 문제를 보다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 왜 그 매체를 선택하셨나요? (사용하고 계신 매체의 장단점)
제가 학교 업무와 나무학교 활동을 하면서 노션을 사용한 지는 2년 반 정도 된 것 같습니다. 그전에는 디지털 노트의 조상 격인 Evernote,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제공하는 Onenote, 구글의 Goole docs, 마인드맵 프로그램인 Mindmeister 등등 정말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사용했었습니다. 제가 생산성 프로그램을 선택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①하나의 프로그램으로 내가 하려는 일의 대부분을 할 수 있어야 하고, ②언제 어디서나 노트북, 태블릿, 휴대폰을 활용해서 쉽게 기록을 확인하고 추가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과거에 사용했던 프로그램들은 두 번째 기준은 어느 정도 만족하지만, 첫 번째 기준에 대해서는 노션을 따라가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할 일이 쌓이는 것을 끔찍하게 싫어합니다. 그렇다고 일을 꼼꼼하게 잘하는 것은 아니지만, 집에서 맘편히 잠잘 수 있도록 빨리빨리 일을 처리하고 싶어 합니다. 일을 빨리 처리하려면 일을 하는데 필요한 정보들을 한곳에 모으는 것이 중요한데요, 이 기능에 있어서 노션은 정말 최곱니다.(제가 노션 홍보대사가 된 기분이네요. 다른 프로그램들도 노션에는 없는 장점들이 있습니다.)
10월 To-do 리스트 – 캘린더 뷰
또 한 가지 빼놓을 수 없는 노션의 장점은 예쁘다는 것입니다. 저처럼 미적 감각이 하나도 없는 사람들도 별다른 노력 없이 깔끔하고 예쁘게 다양한 형태의 기록을 남길 수 있습니다. 노션에는 ‘블록’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노션에 입력하는 텍스트, 이미지, 동영상, 첨부파일, 표와 같은 데이터들은 각각 하나의 블록으로 처리되는데요. 이런 블록들을 하나하나 쌓고 배열해서 마치 레고를 조립하는 것처럼 기록을 남길 수 있습니다.
또 노션은 일에 필요한 다양한 ‘보기 기능’들을 제공합니다. 표, 보드, 갤러리, 리스트, 캘린더 이렇게 총 5가지의 ‘보기 기능’을 제공하고, 때에 따라서 사용자가 보기 형태를 자유롭게 바꿀 수도 있습니다. 이 외에도 이모지 기능, 커버 기능들을 활용하면 큰 노력 없이 금손이 만든 다이어리처럼 자주 보고 싶은 기록을 남길 수 있습니다.
노션에 입력할 수 있는 블록 유형들
▷ 처음에 기록을 남기고자 하신 계기가 있으신가요?
기록을 남기기 시작한 이유는 ‘생존’입니다. 저는 머리가 나빠서(특히 기억력이 나빠서) 기록을 남기지 않으면 이 혹독한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없었습니다. 제가 뭔가를 주체적으로 기록하기 시작한 건 고등학생 때부터였습니다. 혹독한 입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하루하루 무엇을 공부하고, 했는지를 기록하기 위해 그 유명한 ‘프랭클린 플래너’를 썼습니다. 아직도 고향 집에 가면 제가 썼던 다이어리가 여러 권 있는데요, 이 안에는 공부 계획, 일기, 순간순간 떠올랐던 쓸데없는 생각들이 적혀 있습니다. 이렇게 종이 플래너는 대학교 4학년 때까지 썼습니다.
교사가 된 이후엔 수험생처럼 체계적으로 공부할 필요는 없어 플래너를 사용하지는 않았습니다. 학교 업무를 하면서 할 일이 생기면 그때그때 포스트잇에 적어 책상이나 노트북에 붙여놨었습니다. 그런데 태초부터 꼼꼼함과는 거리가 먼 저는 여러 문제를 맞이했습니다. 제가 책상에 붙여놓은 포스트잇이 바닥으로 떨어져 중요한 일의 때를 놓치거나 중구난방으로 붙어 있는 포스트잇들 사이에서 할 일의 우선순위를 제대로 정하지 못했습니다. 책상 위에는 이미 한 일과 앞으로 해야 할 일이 적힌 포스트잇들이 여기저기 붙어 있어서 쳐다보기도 싫었습니다. 요청받은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선생님 죄송해요. 오늘 안으로 꼭 제출할게요!’라고 말하는 날이 너무 많았습니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온라인 노트 프로그램들을 탐색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노션을 사용하고 있는 겁니다.
▷ 주로 어떤 내용을 기록하세요?
저의 일과를 기준으로 말씀드리면, 우선 출근하면 노션을 켜서 To-do 리스트를 작성합니다. 어제 못한 일, 쿨 메신저로 들어온 일을 확인해 오늘 해야 할 일을 쓰고 이 일을 ‘업무, 학급, 수업, 개인’ 태그로 분류합니다. 또 이 일을 하는 데 참고해야 할 파일이나 웹 링크가 있으면 그것도 함께 노션에 첨부합니다.
학급 출석부도 노션을 활용합니다. 종이 출석부에도 출석을 기록하지만 노션에도 기록해둡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종이 출석부의 기록은 시간이 지나면 저와 교과 선생님들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한 기록인지 기억이 나지 않을 때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나이스에 바로 기록하는 것도 생각해봤는데 나이스는 너무너무너무 불편하고 느립니다. 노션에는 태그를 활용해서 기록하면 날짜, 시간, 출결 유형, 이유 등을 빠르고 명확하게 기록할 수 있습니다.
To-do 리스트 – 표 뷰
학급 출석부 – 캘린더 뷰
수업을 준비할 때에도 노션을 활용합니다. 요즘은 능력 있는 선생님들이 온라인상에서 공유해주신 수업자료가 차고 넘칩니다. 중요한 건 내가 이 자료들을 어떻게 아카이빙하고 필요할 때마다 쉽게 찾아서 활용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노션은 아카이빙 기능에 있어 최강입니다. 업로드하는 파일의 용량에 제한이 없고,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언제 어디서나 확인할 수 있습니다. 또 노션엔 검색 기능이 있어서 제가 ‘독서’라고 검색하면 독서 수업과 관련해 모아뒀던 자료들을 단숨에 찾을 수 있습니다.
수업 자료 아카이브 – 보드 뷰
수업 자료 아카이브 – 하위 페이지
작년에 블랜디드 러닝 수업을 할 때는 노션을 프로젝트 수업 담벼락으로 활용하기도 했습니다. PBL에서는 학생들이 스스로 자신의 배움을 관리하는 연습을 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탐구 질문, 프로젝트 일정표, 수행평가 채점기준표, 활동지, 참고자료, 학생들의 중간 결과물 등을 노션에 올려놓고 이 페이지의 링크를 학생들에게 안내했습니다. 학생들이 수업과 관련해서 저에게 질문하면 저는 바로 대답하지 않고, 친절하게 “프로젝트 담벼락을 봐.”라고 말해주면 됐습니다. 저 말고도 김정민 선생님, 김선명 선생님, 신경훈 선생님이 수업에 노션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2020 취업 뽀개기 프로젝트 담벼락
학교 일과가 끝나면 나무학교와 나무학교 PBL센터, 나무학교 편집팀 활동에 노션을 활용합니다. 나무학교 PBL센터는 노션으로 ‘센터 담벼락’을 만들었습니다. 이곳에서 센터 선생님들은 자신의 수업과 공부를 기록하고, 회의 내용을 기록합니다. 노션은 협업 기능도 매우 강력합니다. 여러 명이 동시에 하나의 문서를 작성할 수 있고, 구글 문서처럼 댓글 기능으로 피드백을 주고받을 수도 있습니다.
2021 PBL센터 담벼락
나무학교 편집팀에서 운영하는 웹진 ‘숲소리’도 노션을 기반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노션을 활용해 개인이나 단체의 홈페이지를 만들 수 있습니다. 노션 그 자체로도 충분하지만 Oopy라는 유료 서비스를 활용하면 조금 더 있어 보이는 홈페이지를 제작해 온라인에 접속할 수 있는 모든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습니다. 원래 홈페이지를 만드는 일은 일반인들이 쉽게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HTML, CSS, 자바스크립트, 장고, 파이썬 등의 어려운 코딩 언어를 배우거나 500만원 이상의 큰돈을 써야 했습니다. 하지만 노션을 활용하면 코딩을 몰라도, 돈이 없어도 개인 홈페이지를 만들 수 있습니다. 최근엔 Oopy에서 노션 홈페이지를 활용해 멤버십 서비스를 운영할 수 있는 기능을 추가하는 베타 서비스를 추가했습니다. 그래서 저희 편집팀도 나무학교 정회원과 후원회원들을 위한 멤버십 서비스를 기획하고 테스트 중입니다.
나무학교 활동을 하면서 많은 선생님이 학생들의 배움을 위해 일과 후에, 주말에 모여 생활교육과 수업을 연구하고, 또 연구한 것을 실천하고 함께 성찰하고 있는데 세상은 이런 선생님들을 잘 모르고 있다는 것에 아쉬움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현장 교사가 아니라 교수, 정치인, 행정가, 유명 학원 출신 인사들이 모여 교육 정책을 결정하는 상황에 답답함을 느꼈습니다. 저는 나무학교 숲소리 회지와 웹진을 활용해서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해보고 싶습니다.
노션과 Oopy로 제작한 나무학교 숲소리 홈페이지
나무학교 정회원과 후원회원만 볼 수 있는 교육 자료실
▷ 하루 중 기록을 정리하는 시간이 별도로 있으신가요?
기록하는 시간을 따로 정해두지는 않았습니다. 그냥 기록이 필요하다는 판단이 들 때 노션을 실행하고 기록을 합니다. 이렇게 보면 노션은 제 뇌의 일부입니다. 수많은 정보를 기억하고 보기 좋게 정리해야 하는 뇌의 일을 노션이 대신해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 뇌는 대신 새롭고 재미있는 일들을 상상하고, 기획하는 일을 하는 거고요.
▷ 기록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으셨나요?
기록하기를 좋아하는 저에게 “하루에 계획했던 걸 못하면 더 마음 상하지 않나요?”, “하루에 있었던 일을 기록하지 못하면 죄책감 같은 걸 느끼지 않나요?”라고 물어보시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전혀 이런 기분을 느끼지 않습니다. 기록은 제가 하고자 하는 일의 생산성을 높여주는 ‘도구’일 뿐입니다. 그래서 기록을 하면서 어려운 점은 아직은 없었습니다.
▷ 마지막으로 기록하는 일은 선생님께 어떤 의미가 있나요?
기록을 하다 보면 제가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특히, 과거의 기록을 보면서 “내가 이때 이 일을 왜 이렇게 했지?”, “이 수업은 이렇게 했으면 더 좋았겠네.”라는 생각을 할 때 성장하고 있음을 느낍니다.
기록은 나의 성장을 확인시켜주는 도구인 동시에 나를 성장시켜주는 도구이기도 합니다. 저는 더 많은 선생님이 스타트업의 직장인들처럼 노션과 같은 프로그램을 교육에 관련된 일을 하는 데 활용하시면 좋겠습니다. 노션을 사용하기 전의 박준일과 노션을 사용한 후의 박준일, 노션을 사용하기 전의 PBL센터와 노션을 사용한 후의 PBL센터는 많이 다르거든요.
참고로 노션은 개인 혼자서 사용할 때에는 무료 요금제로도 충분합니다. 초기에는 무료 요금제는 페이지와 블록 생성 개수가 100개로 제한되어 있었는데 그 제한이 사라졌어요. 대신 교사학습공동체나 팀으로 노션을 함께 활용하려면 교육 요금제로 업그레이드하는 게 좋습니다. 노션은 매달 5달러를 지불해야 하는 개인 프로 요금제를 학생과 교사들에게 무료로 사용할 수 있게 서비스하고 있습니다. 개인 프로 요금제는 무제한의 게스트와 협업하고, 페이지의 버전 기록 기능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저는 충남 교육청의 업무 메일인 cne메일로 계정을 생성해서 인증을 받아 이 요금제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노션 요금제 설명
확실히 2년 전보다 많은 선생님이 업무와 수업, 교사학습공동체 활동에 노션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매우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해요. 앞으로 시간이 허락해준다면 노션을 활용해보고 싶은데 엄두가 나지 않는 선생님들을 위해 유튜브 에듀스페이스 채널에 관련 영상을 올리고 싶습니다. 혹시 이 인터뷰를 읽고 노션에 대해 궁금한 점이 생기시면 저에게 연락해주세요!
정윤희(천안두정고 일본어 교사)
부족한 글 솜씨를 열정과 호기심으로 메꾸고 있습니다. 다양한 생각을 가진 나무학교 선생님들과의 인터뷰는 그래서 매번 저에게 일종의 도전입니다. 솔직하고 깊이 있는 인터뷰를 위한 좋은 질문이란 무엇일지 계속해서 고민하며 도전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