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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학점제, 현실이 되어 가는 이상을 경험하며

고교학점제, 현실이 되어 가는 이상을 경험하며

이광현
처음, 회지의 ‘교육 비평’에 실을 글을 의뢰받았을 때, “교직 경험 3년 차인 ‘저경력 교사’인 내가 비평이란 것을 할 수 있을까”하는 걱정이 앞서며 고민만 이어가다 어렵게 글을 쓰게 되었다. 글쓴이는 중학교에서 2년 근무를 마치고 고등학교로 근무지를 옮기면서 ‘고교학점제 연구학교 업무 담당’을 맡게 되었고, 학교 교육과정 운영과 더불어 고교학점제 도입에 따른 여러 연구 과제들을 주도적으로 진행해야 했다. 더욱이 코로나19로 인한 학사 운영의 어려움까지 겹치면서, 얼마 안 된 교직 생활에 대해 크게 회의를 느끼며 “내일 주어지는 숙제는 부디 숨 쉴 수 있는 수준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버텼던 것 같다.
그만큼 제반 행정 업무가 쉽지 않고 어려워 힘든 나날을 보냈지만, 맡은 역할을 고민하며 달려올 수 있었던 데에는 고교학점제가 제시하고 있는 이상에 동의했기 때문이다. 그 이상은 무엇일까. 무엇이 나를 계속 움직이게 했을까. 이 글은 고교학점제를 설명하는 글이 아니다. 글쓴이는 그저 이 글을 통해 선택형 교육과정을 운영했던 담당자로서의 경험을 공유함으로써, 읽는 이들이 다가올 고교학점제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떨치고 함께 고민하며 이상을 현실로 앞당길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야기해 보려는 것이다.

아이들이 선택한 수업, 살아 움직이는 학교

교실 수업에서 느끼는 가장 행복한 순간은 아이들이 수업에서 살아 움직일 때다. 반대로 가장 힘들 때는 아이들이 수업에서 무기력할 때다. 아이들은 왜 무기력할까.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배움에 대한 동기가 없을 때 무기력 현상은 더 분명하게 나타날 것이다. 그래서 언제나 교사들에게 주어졌던 중요한 과제는 아이들이 배움의 의지를 키울 수 있도록 학습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만약 아이들이 스스로 원하는 수업, 원하는 학습 내용을 배우기 위해 수업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면 그 자체만으로 아이들의 학습 동기는 더 커지지 않을까?
이뤄지지 않을 것 같던 이상이 고교학점제라는 이름으로 현실이 될 준비 단계에 들어갔다. 미래사회의 도래와 직업 세계의 변화, 학령인구의 감소 등 다양한 배경 요인을 바탕으로 공교육의 정상화와 책임교육의 실현을 목표로 한 학생 선택형 교육과정의 운영은, 그야말로 아이들이 스스로 선택하고 구성한 개별 교육과정을 이수하고 졸업하는 맞춤형 교육과정이라는 점에서 그동안 실현되지 않았던 이상적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학교는 2018학년도부터 여러 선생님들의 노력으로 고교학점제 연구학교를 운영하며 학생 선택형 교육과정을 운영하였다. 그 결과 학교 교육과정에서 학생들이 선택할 수 있는 과목 편제가 확대되었고, 아이들은 각자의 적성과 진로를 고민하여 수강 과목을 선택하고, 해당 선택 과목 수업 시간이 되면 반을 이동하며 학교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이러한 자발적 학습 동기에서 시작한 선택형 교육과정 운영으로 수업 형태는 학생 활동 중심 수업의 확대로 바꿔 나갔고, 학교는 점차 교사와 학생이 함께 움직이는 살아있는 유기체로 변화해 갔다. 뿐만 아니라 자발적 동기에 의한 학생들의 학습 경험은 학교의 다양한 캠프 활동, 학교 간 연합에 의한 공동교육과정, 학생 주도 자율적 프로젝트 학습 참여 등으로 이어지며 아이들의 살아있는 학습 의지와 욕구를 느낄 수 있는, 이상을 점차 현실로 구현하고 있다고 느꼈다.
사실 이미 고교학점제 체제에 맞는 학교 운영을 준비하고 있는 학교들은 ‘학교연합형 공동교육과정’을 통해 학습 의지에 불타는 적극적인 아이들을 만나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운영 과목에 따라 다르겠지만 공동교육과정에 참여하는 아이 중에는 학업 성적이 높은 아이도 있지만, 학교 수업에서 대단히 무기력한 아이도 섞여 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아이들이 각자 원하는 과목을 선택하고 원하는 수업을 들을 때면 매우 적극적인 학습자가 되어 수업에 참여하게 된다. 이러한 사실은 첫째, 천안교육지원청에서 운영하는 공동교육과정 과목만도 50여개 이상으로 확대되었다는 점과 둘째, 공동교육과정 운영 후 참여자 만족도 조사에서 교사와 학생의 만족도가 매우 높을뿐더러 다음 과목 개설 및 다른 과목 수강을 각각 희망하고 있다는 점 등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은 전국의 고교학점제 연구학교들에서 너무나도 보편적으로 나타나고 있어 이제는 새롭지 않은 ‘기정사실’이 되어가고 있다.
[연극의 이해] 표현 평가 장면
[생명과학Ⅰ] E2 생태학 실습
[공학일반] 3D 펜 활용 모형 제작
[현대 세계의 변화] 토론 평가 장면

선택형 교육과정 운영, 어렵지 않아요

죄송하다. ‘어렵지 않다’는 말은 거짓이다. 선택형 교육과정 운영 경험이 3년째에 접어든 학교에서도 많은 갈등과 해결의 과정이 있었다. 그럼에도 ‘어렵지 않다’고 말한 데에는 선택형 교육과정의 실현이 ‘절대 불가’의 영역도 아니기 때문이다. 어떠한 제도의 도입에는 일련의 과정이 필요하다. 사실 이 과정이 어려운 것이다. 여러 고교학점제 연구학교 담당자들이 하는 이야기는 대부분 2가지로 중복된다. 죽겠다해보니 된다이다. 그래서 선생님들께 작은 용기나마 드리고자 감히 ‘어렵지 않다’는 문구를 적었다. 기왕 맞을 일이라면 함께 고민해서 도입기 연구학교들보다 멋지게 학교가 운영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적었다.
고교학점제의 도입을 위해, 즉 선택형 교육과정을 운영하기에 앞서 가장 먼저 이뤄져야 하는 것은 학교 혁신이다. 학교 혁신이 하나의 개념으로 정의될 수 없겠지만 무엇보다 학교 운영에 참여하는 교육공동체의 의사 결정 구조와 과정이 변해야 하고, 함께 고민하고 동참하겠다는 구성원의 의지가 필요하다. 그러지 않으면 업무 담당자만 고생하며 늘 그 보직은 기피 대상 1호가 되는 현상이 나타날 것이다.
선택형 교육과정 운영의 핵심은 ‘학생들이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과목을 편성’하는 것이다. 학생들이 진로와 적성을 고민하고 과목을 선택, 이수할 수 있도록 학교의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것이 핵심이며, 이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교육공동체의 의견이 수렴되고 반영되어야 할 것이다. 사실 이 과정이 가장 어려운 부분이기에 리더의 역량과 그 학교의 의사소통 구조, 학교 문화 등을 알 수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선택형 교육과정 편성이 끝났다면 고교학점제의 반은 실현되었다고 본다. 이후 과정은 학생들에게 수강 신청을 받고, 신청 현황에 맞게 반과 시간표를 편성하여 운영하는 일만 남았기 때문이다. 죄송하다. 사실 한 문장으로 축약했지만 지금 언급한 제반 업무는 어마어마하다. 현재 대부분의 학교들이 수강 신청을 받기 전에 ‘교육과정 박람회’라는 형태의 과목 안내 행사를 실시하고 있다. 상담 형태가 될지, 행사 형태가 될지는 학교의 여건과 의사결정 과정에 따른 것이지만, 의외로 과목 선택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이 많으므로 이 과정을 간과하지 말고 내실 있고 효율적으로 운영할 필요가 있겠다. 수강 신청 후 따라오는 행정 업무들은 학생들의 선택 결과에 따라 경우의 수가 아주 다양하므로 정답이 없다. 그러한 경우의 수를 정리, 조정하기 위해 현재 새로운 나이스와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개발되고 있으니, 조금은 우리의 업무가 줄어들 훌륭한 프로그램이 등장하길 기대하며 남은 일들을 처리하시면 좋겠다.
[교육과정 박람회 모습]
[교육과정 박람회 모습]

이상은 정말 현실이 될 수 있을까

사실 글쓴이는 무조건적인 고교학점제 찬양론자가 아니다. 고교학점제를 주제로 3년간 연구를 진행한 학교의 업무 담당자라는 이유로 전국의 고교학점제 연구학교 담당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불평과 불만을 엄청나게 쏟아냈던 기억이 있다. 학생 수강 희망 과목과 현 교육과정의 편성의 문제, 교원 수급 문제, 평가와 대입 문제, 행정 지원 문제, 예산 문제 등 다양한 문제들을 제시하며 실현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했고, 지금도 그러한 의문들은 여전하다. 특히 그중에서도 2025 개정 교육과정의 도입에 따른 대입 체제의 변화와 과목 평가 문제가 성취평가제의 취지에 맞게 변화할 수 있는가 하는 점, 정확히는 고교학점제의 도입 취지와 성취평가제가 함께 가는 개념이라고 할 때, 대입 체제가 어떻게 함께 나아갈지 기대 반 우려 반으로 정책 연구와 결정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이렇듯 글쓴이는 고교학점제 도입에 의한 학생 선택형 교육과정 운영이 새롭고, 어렵고, 힘들다는 것을 부정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글의 첫 시작에서 밝혔듯 2020년은 글쓴이에게 너무나도 힘든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선택형 교육과정 도입을 찬성하는 이유는 고교학점제의 취지에 대한 공감과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아이들과 아이들을 위해 움직이는 선생님들의 모습을 보고 경험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모습이 우리가 원하던 학교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고교학점제가 지금은 비록 어렵지만, 정말 학교가 살아 움직일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이러한 기대 속에 학교의 변화 속 함께 고민하는 선생님들께 작은 용기가 되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
추신: 현시점에서 쓰인 고교학점제 관련 책 하나를 추천하고자 한다. 어떤 방법이나 대안을 원한다면 보지 않아도 좋겠다. 그 취지와 방향에 대해 고민하고자 하는 분은 『고교학점제,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2020)를 추천한다.
이광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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