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당신을 봅니다
정순민(천안계광중학교 국어 교사)
추천 책: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비욘 나티코 린데블라드, 다산초당)
숲속의 현자가 전하는 마지막 인생 수업이라는 부제의 책. 세상에는 무수한 종류의 책들이 있고 그 책들을 다 만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일부의 책들을 알게 되고, 약간 소장하게 된다. 그러나 그중에 태반은 스쳐 지나간다.
일부 사람들은 책을 소개할 때 ‘이미 읽어보셨겠지만’ 혹은 ‘알고 계시겠지만’이라고 하며 그 책을 아는 게 당연하다는 듯이 말한다.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세상에는 너무나 많은 책이 있고, 그중에서 아주 극소수만을 만나게 된다. 사람을 만나는 것이 인연이듯이 책을 만나는 것이 인연이다.
이 책은 특별한 인연으로 만난 책이다. 어떤 선생님이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생각났단다. 그리고 기쁜 마음으로 선물해 주었다. 출가승에 대한 이야기라 그 선생님에게 나보고 출가하여 승려가 되기를 원하는지 묻기도 했었다.
누군가가 정성스럽게 선물한 책은 소중하게 간직된다. 그리고 읽게 된다. 그 선생님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나 궁금해서 더 호기심을 가지고 읽었다. 이 책에서 '비욘'이라는 젊고 유능한 중간 관리자가 회사를 그만두고, 저 멀리 태국으로 건너가 숲속 사원의 승려로 17년을 수행한다. 그리고 승려로서의 삶이 익숙해진 어느 날 다시 세상으로 나와 다른 길을 걷게 된다. 그리고 루게릭병에 걸려 몸은 점점 약해지며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에 대한 기록이다.(비욘 스님은 2022년에 세상을 떠났다.)
읽어보니 나하고는 전혀 다른 사람이다. 삶에 대한 치열함이 다른데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그 내용이 얼마나 같겠는가? 아마 그 선생님은 내가 더 현명하게 지혜롭게 살기를 바란 듯싶다. 고맙다. 그리고 나도 이 책의 내용을 이렇게 '나무학교' 선생님과 나눌 수 있어 기쁘다.
이 책은 참 쉽다. 원래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어려운 책들은 싫어했는데 이 책은 편하다. 안마의자에 누워 눈을 감고 오디오북을 듣는 느낌이다. 너무 집중하지 않아도 된다. 졸아도 된다. 그러다가 몇 페이지 놓치고 넘어가도 좋다. 비욘 스님은 옆에서 이야기하듯 담담하게 나는 이런 삶을 살아왔다고 말한다. 그런데 어떤 내용에서 읽기를 멈추게 된다. 그리고 한 번 더 읽게 된다. 그리고 곱씹어보게 된다. 나는 어떻게 살고 있지?
이 책에 대한 나의 이야기는 그만 줄이려고 한다. '나티코' 스님의 이야기를 온전히 전하는 것이 이 글을 읽는 분에게 더 도움이 될 것 같다.
인생에서 중요한 건 따로 있었지요. 현재 하는 일에 온전히 집중하기, 진실을 말하기, 서로 돕기, 쉼 없이 떠오르는 생각보다 침묵을 신뢰하기, 마침내 집에 돌아온 것 같았습니다.(81쪽)
우리가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그리하여 모두 본연의 모습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허락할 때 인생은 크게 달라집니다. 각자의 강점과 재능을 발휘하면서 앞으로 나아갈 기회를, 더 나은 모습으로 발전할 기회를 서로 상대에게 줄 수 있습니다. 남들이 우리를 있는 그대로 받아준다고 느끼면, 우리 또한 남들을 더 너그럽게 대하기 쉽습니다.(94쪽)
아무런 편견이나 판단 없이 귀를 기울이면 다른 사람은 둘째치고라도 먼저 자기 자신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122쪽)
갈등의 싹이 트려고 할 때, 누군가와 맞서게 될 때, 이 주문(내가 틀릴 수 있습니다)을 마음속으로 세 번만 반복하세요. 어떤 언어로든 진심으로 세 번만 되뇌인다면, 여러분의 근심은 여름날 풀밭에 맺힌 이슬처럼 사라질 것입니다. (130쪽)
순간에 몰입할 줄 아는 사람은 닥치지도 않은 온갖 일에 대응할 방법을 궁리하면서, 혹시나 잘못될지도 모를 상황을 미리 숙고하지 않습니다. 원하는 대로 상황이 흘러갈지를 끊임없이 걱정하지도 않지요. 오히려 열린 마음으로 현재에 충실하게 대응합니다.(185쪽)
우리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맺는 온갖 관계 중에서 단 하나만이 진정으로 평생 이어집니다. 바로 우리 자신과 맺는 관계입니다. 그 관계가 연민과 온정으로 이루어진, 사소한 실수는 용서하고 또 털어버리 수 있는 관계라면 어떨까요?(223쪽)
자기 행동과 말에 책임지는 사람, 진실을 고수하고 규칙을 존중하는 사람, 다른 사람을 일부러 해치지 않는 사람, 그런 사람은 열대의 밤하늘에 뜬 보름달처럼 구름 뒤에서 서서히 나타나 온 세상을 환히 비춰준다.(271쪽)
맛있는 사탕은 조금씩 맛을 음미하며 먹어야 맛있지요. '비욘' 스님의 글을 한곳에 모아 놓으니, 행간이 사라져서 뭉쳐진 사탕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마음에 드는 한 두 구절에 집중해서 맛보시길 추천합니다. 그리고 책을 직접 읽고 이 구절들을 온전하게 맛보기를 기대합니다.
"나는 당신을 봅니다."
아바타 물의 길을 최근에 보았습니다. 약간 졸기도 하고 흐리멍덩한 상태에서 봤기 때문에 이 말이 나왔던 장면이 명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아요. 하지만 이 말이 너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냥 'I see you.'가 아니라 나는 너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받아들인다는 말로 읽혔지요. 글을 마무리하여 이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나는 당신을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