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연재]노동인권 프로젝트 제3화
-노동인권 관련 도서 읽고 책 대화하기-
박준일(온양여자고등학교 국어교사)
*노동인권 교육을 위해 뭐라도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쓴 글입니다.
앞으로 시간 여유가 생길 때마다 수업 장면을 기록하고 연재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온양여자고등학교 국어교사 박준일입니다. 지난 글에서는 학생을 노동인권 프로젝트의 탐구 주체로 세우기 위해 도입활동을 어떻게 진행했는지 말씀드렸습니다.
이렇게 도입활동에서 문제 상황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과 흥미를 유발했다면 이제 본격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탐구에 들어가야 합니다. 이번 글에서는 제가 학생들의 노동인권에 대한 이해를 확장시키기 위해 활용했던 책 대화 수업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1. 책 대화 시작하기
책 대화 수업은 서로 같은 책 또는 다른 책을 읽고 책의 내용과 관련하여 질문을 만들어 모둠원들과 책에 대한 생각을 나누고 그 과정을 기록하는 수업입니다. 단순히 책의 내용과 관련해 교사가 제시한 질문에 답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질문을 만들고, 그 질문에 대해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생각의 확장이 일어날 수 있다는 점에 의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무턱대고 학생들과 책 대화를 시작하면, 실패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책을 읽고 정보를 이해하는 것을 넘어, 추론적 사와 비판적 사고, 성찰적 사고를 발휘하여 질문을 만들고 논리적으로 답을 구상하는 것은 매우 고차원적인 사고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본격적인 책 대화를 하기 전에 쉬운 글로 학생들과 함께 글을 읽는 방법, 질문을 만드는 방법, 질문을 가지고 모둠원들과 대화를 나누는 방법을 연습하는 단계를 갖는 것이 좋습니다.
저는 이런 연습을 하기 위해 학생들과 노동인권과 관련한 그림책을 읽었습니다. 노동인권에 대한 학생들의 생각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그림책은 참 다양합니다. 선생님들께 추천드릴 만한 그림책으로는 지하철이 화자가 되어 지하철에 타고 내리는 사람들의 삶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나는 지하철입니다>(김효은, 문학동네 어린이), 어린아이 펠레가 옷 한 벌을 얻기 위해 많은 일을 해내는 과정을 담은 <펠레의 새옷>(엘사 베스코브, 비룡소), 자기들만 털을 깎아서 겨울에 감기에 걸린다는 양들의 파업 이야기를 담은 <양들은 지금 파업 중>(장 프랑수아 뒤몽, 봄봄), 2000년 미국 LA에서 있었던 청소 노동자들의 파업 이야기를 담은 <우리 엄마는 청소노동자예요!>(다이애나 콘, 고래이야기) 등이 있습니다. 그림책은 학생들이 부담스럽지 않게 다가갈 수 있습니다. 그림책에 담긴 짧은 글과 그림은 관점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해 하나의 주제에 대해 서로의 생각과 경험을 이야기하는 책대화에 대한 학생들의 흥미를 높일 수도 있습니다.
저는 이 중 <우리 엄마는 청소노동자예요!>를 학생들과 함께 읽고 책 대화를 연습했습니다. 그럼 독자님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그림책 책 대화 수업을 어떤 과정으로 진행했는지, 가상의 수업 대화를 글로 옮깁니다.
<그림책 읽기 수업 가상 수업 대화>
교사: 우리 지난 시간에 독서의 방법에 대해 공부하면서, 책을 읽으면서 만들 수 있는 질문의 유형들을(안내 자료: 질문의 유형) 살펴봤었죠? 오늘은 그림책 <우리 엄마는 청소노동자예요!>를 함께 읽으면서, 질문을 만들고, 그 질문들로 모둠원들과 생각을 나누는 책 대화 활동을 해볼 거예요. 그림책을 읽으면서 각자 5개씩 궁금하거나 친구들과 이야기나누고 싶은 내용을 질문으로 만들어 봅시다.
(그림책을 함께 읽는다. 학생들이 1명씩 이어서 그림책을 읽는다. 그림책은 교실 앞 TV(또는 빔프로젝터) 화면에도 동시에 띄워져 모든 학생들이 함께 볼 수 있다.)
교사: 각자 만든 5가지의 질문들을 모둠 안에서 공유하고, 함께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은 질문 1가지를 선정해 봅시다. 질문을 선정할 때에는 다양한 생각이 오갈 수 있고, 노동인권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질문을 뽑아주세요. 모둠장이 책 대화의 사회자가 되어 대화를 이끌어주고, 기록이는 모둠원들의 이야기들을 활동지에 기록해주세요.
학생1: 우리 학생3이 만든 질문 중에서 ‘우리 사회에서 파업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를 가지고 이야기 나눠보면 어떨까? 이 질문이 책의 주제와도 밀접하게 관련이 있고, 우리가 다양한 생각을 나눌 수도 있을 것 같아
학생2: 좋아, 가끔 뉴스를 보면 노동자들이 파업을 한다는 소식을 자주 들을 수 있잖아. 또 이 문제에 대해 부모님이나 국회의원들도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고. 나도 이 질문을 가지고 생각을 나눠보고 싶어.
학생1: 그래, 그럼 누구부터 이야기해볼래? (반응을 기다리다) 질문을 만든 학생3부터 이 질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야기해주면 좋겠어.
학생3: 알겠어. 나는 노동자들의 파업이 우리 사회가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 기업과 노동자의 관계를 볼 때 대부분의 상황에서 노동자들은 약자에 속하잖아? 우리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사회가 인간이라면 누구나 존중받을 수 있는 사회라면 노동자는 어쩔 수 없이 가지게 되는 약자의 입장에서 기업과 대등하게 설 수 있는 장치가 반드시 필요한 것 같다. 그 장치가 노동자들의 파업인 거고.
학생4: 나는 학생3과 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어. 우리나라에는 이미 충분한 대우를 누리고 있으면서도 지나치게 많은 요구를 하는 노동자들도 있는 것 같아.
학생1: 학생4는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줄 수 있어?
학생4: 언젠가 뉴스 기사에서 대기업에서 정규직 노동자들이 자기들의 이익만을 주장하고, 자기들보다 더 열악한 위치에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나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권리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는 내용을 본 적이 있어.
학생2: 나도 학생4와 비슷한 기사를 본 적이 있어. 노동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노동조합을 결성해서 파업을 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지만, 자기가 속한 집단이 아닌 다른 집단에는 무관심하거나, 기업과 대화는 시도하지 않고 무조건 파업부터 시작하는 건 문제가 있는 것 같아.
학생1: 그렇구나. 그럼 우리의 생각을 종합하면 ‘노동자들의 파업에 대해서 파업 자체는 노동자들의 권리를 지키는 중요한 수단이기 때문에 순기능이 있지만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지나친 이기심이 반영된 파업은 개선될 필요가 있다.’라고 정리할 수 있을까?
학생2,3,4: 좋아.
학생2: 그럼 내가 지금까지 나눈 대화를 정리해서 대표로 발표할게!
2. 책 대화가 원활히 이루어지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성인들에게도 책 읽기 모임에서 책을 읽고 이것에 대해 생각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이 점을 간과해 학생들이 책 대화를 처음부터 잘할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수업을 진행했다가 실패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책 대화가 원활히 이루어지게 하기 위해 어떤 장치들을 마련해야 할까요?
책 대화에 모든 학생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각 모둠원에게 구체적인 역할을 부여하고, 어떤 대화가 좋은 대화인지 예시를 보여주시는 것도 좋습니다.
저는 보통 책 대화 시 4인 1모둠으로 모둠을 구성하고 눈, 입, 손, 귀, 이 네 가지로 모둠원의 역할을 안내합니다. 이 방법은 충남의 교사학습공동체인 배움의 숲 나무학교의 중등국어교사 모임의 선생님들이 만든 방법인데요. 눈 학생은 모둠장의 역할을 하는 학생입니다. 선생님의 안내를 경청하고, 정확하게 이해하여 모둠원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안내하거나, 모둠 토의 시 사회를 봅니다. 입 학생은 모둠원들의 생각을 모아 전체 반 친구들에게 발표하는 발표자입니다. 손 학생은 모둠원들이 생각을 이야기하면 그것을 체계적으로 기록하는 역할을 합니다. 귀 학생은 모둠 활동의 성패를 가르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합니다. 모둠원들의 이야기를 잘 경청하고 ‘우와~ 정말 좋은 생각이야.’,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니?’ 등의 말로 긍정적인 리액션을 하는 역할을 합니다. 모둠원들 각각의 역할이 정해지면 선생님께서는 본격적인 모둠 활동 전에 학생들에게 각 역할이 해야 하는 말과 행동을 시범을 통해 안내해주시는 것이 좋습니다.
또 이러한 협업 역량을 수행평가로 평가할 수도 있습니다. 이때, 좋은 협업이란 무엇인지, 좋은 대화는 무엇인지의 내용을 담은 채점기준표를 제작하여(사회적기술 채점기준표 화면) 학생들에게 예시와 함께 안내해주시는 겁니다. 화면에 보이는 사회적 기술 채점기준표는 온양용화중학교의 양철웅 선생님이 만들어 수업에 활용하신 채점기준표입니다. 이렇게 협업 역량을 평가하면 학생들은 우리가 교과에서 배우는 지식들뿐만 아니라 이러한 실제적인 역량도 중요한 것이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의식적으로 좋은 협업을 연습하게 됩니다.
<양철웅(2021), 사회적 기술 채점기준표, 나무학교 숲소리 2호, p58.>
3. 노동인권 관련 도서 소개
최근 노동인권에 대한 사회의 관심이 늘어나면서, 노동인권을 주제로 한 다양한 책들이 출판되고 있습니다. 저는 노동인권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교사였기 때문에 수업을 준비하기 전에 방학을 이용하여 노동인권을 다룬 도서들을 많이 읽어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읽어봤고, 선생님들께 수업용 도서로 추천드리고 싶은 책은 이런 책들입니다.
1~3번에 있는 책은 실제 노동인권 활동가 분들이 10대 청소년들을 위해 청소년들이 사회에 나가거나 아르바이트를 하기 전에 반드시 알아야 할 노동의 가치, 노동자로서의 권리 등을 담은 책입니다. 4~5번 책은 청소년들과 성인들의 노동 현장을 기록하고, 우리나라의 노동 현장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6번 책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삶을 그려낸 초등학생들을 위한 만화입니다. 이 책은 제가 학교에서 만났던 학생들 중 긴 글을 읽기 어려워하는 친구들에게 권했던 책이기도 합니다. 끝으로 7~8번 책은 노동을 테마로 한 소설과 시를 엮은 문학 선집입니다.
책 대화에 비문학 도서를 활용하면 학생들이 노동인권과 관련해 반드시 알아야 할 역사적 사실, 법 지식, 노동과 노동 조합의 의미 등을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한편 책 대화에서 소설과 시를 활용하시면 학생들이 노동 현장을 보다 실감나게 느낄 수 있고, 작품에 등장하는 상황이나 인물들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해 책 대화도 더욱 풍부해질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저는 학교의 도서관 예산을 활용해 각각의 책들을 5~6권씩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모둠 별로 한 권의 책을 선정하여 함께 책을 읽게 했습니다. 책의 종류는 모둠의 수보다 많게 준비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책을 선정할 때 1~3순위를 미리 생각하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야 모든 모둠이 불만 없이 긍정적인 마음으로 독서에 참여할 수 있게 됩니다.
책을 읽으면서 학생들은 교사가 준비한 독서 활동지 양식에 따라 인상깊은 장면이나 핵심적인 내용을 정리하고, 해당 내용과 관련하여 자신이 겪은 일, 듣거나 본 일을 떠올리고, 모둠원들과 함께 이야기나누고 싶은 주제를 질문의 형태로 만들어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이 기록이 책 대화의 재료가 되어, 다음 시간에는 자신들이 만든 질문들 중 1 ~ 2가지를 선정해 책 대화를 나누고, 기록하고, 반 친구들에게 공유하도록 했습니다. 제가 이 과정에서 학생들에게 바랐던 점은 첫째, 노동과 노동인권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쌓는 것. 둘째, 책에 담겨 있는 이야기들과 우리의 삶을 연결지어 생각하는 것. 셋째, 질문을 만들고 모둠원들과 대화하면서 노동인권에 대한 이해를 점검하고 확장하는 것이었습니다.
책 대화 활동을 수업에 적용하실 때에는 학생들과 충분히 사전 준비를 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모둠원 간에 관계를 세우기 위해 다양한 아이스브레이킹 활동을 하고, 모둠원의 역할을 명확하게 정하고, 모둠 약속을 만드는 모둠 세우기 시간을 1~2시간 정도 가지시는 것이 좋습니다.
또 학생들이 수업 시간에 직접 질문을 만들어 본 경험이 많지 않다면 질문을 만드는 것 자체에 어려움을 느낄 수 있는데요.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하브루타 수업에서 많이 활용하는 질문 놀이를 하면서 질문을 만드는 연습을 하고, 질문의 유형들을 익히는 것이 좋습니다.
‘이 활동들을 언제 다 하면서 탐구도 하나~’하고 걱정하시는 선생님들이 계실 것 같은데요. 프로젝트 수업은 처음부터 너무 욕심을 내면 실패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저는 1학년 1학기 때 모둠 활동이나 질문 만들기를 충분히 기본적인 것들을 연습하고 2학기 때 노동인권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다음에 또 독서 기반 노동인권 수업을 한다면 추가하고 싶은 책 목록
전국금속노동조합, <여성노동자, 반짝이다>, 나름북스, 2021.
박정훈, <배달의민족은 배달하지 않는다>, 빨간소금, 2020.
강혜인, 허환주, <라이더가 출발했습니다>, 후마니타스, 2021.
김경희, <당신의 노동은 안녕한가요?>, 루아크, 2021.
김철식 외, <모두를 위한 노동 교과서>, 오월의 봄, 2021.
박정훈, <이것은 왜 직업이 아니란 말인가>, 빨간소금, 2019.
김하영, <뭐든 다 배달합니다>, 메디치미디어, 2020.
손석춘, <새내기 노동인 ㄱㄴㄷ>, 철수와영희, 2020.
유경준 외, <노동의 미래>, 현암사,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