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에는 담임을 할까, 말까
이지영(천안동중학교 과학 교사)
다양한 아이들과 매일 매일 새로운 사건들을 겪다 보면 늘 고민하게 된다. 내년에는 담임을 할까, 말까. 한다면 몇 학년을 맡을까? 사실 내가 하고 싶지 않다고, 또는 몇 학년을 맡고 싶다 하더라도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오늘도 또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다.
주 수업 학년은 2학년이지만 1학년도 한 반을 지원하는데, 어제는 1학년 교실에 들어가자마자 한 여자아이가 “선생님, 내년에 2학년 과학 수업도 쌤이 해주세요!”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내심 설레는 마음으로 물어보니 “쌤이 늘 열심히 해주셔서 2학년 때 쌤이 과학 가르쳐주시면 열심히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 ”라는 예쁜 말을 한다.
돌덩이만 가져다줘도 반짝거리는 눈으로 신기하다며 열심히 관찰하는 예쁜 아이들이라 나 역시 신나서 이것저것 가져와 보여주고, 평소 잘 안하는 조별 활동을 하고, 만들기 활동도 했더니 그렇게 느껴졌나 보다. 아이의 말을 듣고 기쁜 마음 한편으로, 2학년 수업에 치여 준비가 부족했던 지난 수업들과 1학년임에도 불구하고 정색하며 잔소리했던 지난날들이 떠올라 미안해졌다. 그 와중에 나는 또 내년에 담임을 할지 말지, 몇 학년을 맡을지를 고민하게 된다. ‘현재 내가 과연 잘하고 있는 것인가’, ‘내가 담임을 맡아도 되는 것일까’ 하는 고민들은 해를 거듭하고 주변의 멋진 선생님들을 보며 조금씩 다듬어져가고는 있지만, 나는 아직도 많이 부족하고 미숙하다.
변화를 기억하고 알아보기
현재 맡은 반은 2학년 남녀 합반이다. 내내 남중에만 있어서 여학생은 처음인데 합반이라니∼ 게다가 2학년 수업 역시 처음이다… 고민이 많았던 학기 초가 지나가고 어느새 11월, 학년의 끝이 다가오고 있다.
아이들을 대하는 방법이나 학급을 운영하는 면에서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주변 선생님들을 보고 배우면서 조금 더 아이들에게 관심을 갖고 아이들의 변화를 기억하고 알려고 노력한다. 사실 그게 당연한 건데 나는 그 부분이 많이 부족했었다. 그래서 올해는 의식적으로 더 노력했고 아주 사소하게 안경을 바꾼 것부터 다른 수업 시간에 있었던 일을 듣고 기억하여 꼭 그 아이에게 말을 건넸다. 그러려면 아이를 많이 보고 관찰해야 하는데 수업 시간만으로는 아쉬워서 틈틈이 쉬는 시간, 점심 시간에도 교실에 가서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자연스럽게 아이들의 대화에 끼기도 하고, 먼저 달라진 실내화나 마스크 색, 머리 스타일을 이야기 하였더니 나중에는 아이들이 먼저 다가와 말을 건네기도 하고 다른 아이들의 이야기를 전해주기도 하였다. 그렇게 아이들에 대해서 많이 알고 이해하게 되었다.
고민스러운 1인 1역
늘 학기 초가 되면 열심히 정하는 1인 1역이지만 실제 1년 동안의 운영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올해만큼은 제대로 해보자며 우리 반에 필요한 1인 1역을 같이 이야기하고, 1인 1역 신청서를 받고, 분기별로 맡은 1인 1역에 대한 소감 및 잘한 친구들이 누구인지 설문을 받아서 학기 말에 시상을 했다. 물론 담임 선생님이 주는 상장과 상품이지만 아이들은 그것만으로도 좋아했다. 중간 중간 역할에 대해 수정과 보완을 거치며 꼭 필요한 역할들만 남기고 수정했지만, 역시 안하는 아이들은 안하고, 하는 아이들만 했다. 분기별 역할을 새로 정할 때 나름 편한 걸 찾는 아이들도 있었다. 역할별로 쏟아야 하는 에너지와 시간이 다르다보니 어쩔 수 없이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그래서 2학기 때는 학급 부서별로 1인 1역을 분배하여 운영하였다. 부서별 역할을 알려주고 희망 부서를 받고 부서별로 협의하여 부장과 역할을 배분했다. 개인별로 역할을 배분하되 혼자 하기 부담스러운 부분은 부서원들이 다 같이 진행하기로 하였다.
▲ 부서별 1인 1역을 운영
그전에는 내가 혼자 했었던 자리 뽑기 같은 다소 번거로운 부분도 부서로 넘겨버렸다. 자리를 뽑는 주기, 방법, 배치까지 자리 뽑기와 관련된 모든 것을 학습부에서 알아서 하라고 했더니, 다양한 방법을 연구해서 한 달에 한 번씩 자리를 배정하고 있다. 자리에 대한 불평이나 언제 자리 뽑는지에 대해 자꾸 나에게 물어오던 아이들에게 ‘학습부 소관이니 학습부에 건의해라.’고 하였더니 시행착오 거치고 거쳐 2학기 들어서 벌써 4번이나 자리뽑기를 진행하였다.
▲ 학급 건의함
생일 챙기기나 학급 행사에 관한 일은 홍보부 아이들이 전담하였다. 1학기 때부터 이벤트 관리자 역할을 맡았던 아이들은 다른 부서들보다 의욕이 넘쳤었는데, 2학기 때 본격적으로 부서가 생기니 아이들이 더 신나서 ‘우리 만난 지 200일’ 기념행사도 본인들이 의견을 내서 진행했다. 또 행사를 진행하고 싶어서 매일같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낸다.
▲ 홍보부에서 준비한 200일 행사
▲ 만난 지 100일, 아직 어색하다
▲만난 지 200일, 많이 친해진 아이들
현재 기획 중인 행사는 15일에 열리는데, 4개의 관문을 두어 각 관문마다 문지기가 있어, 도장깨기 식으로 각 관문에서 진행하는 게임을 통과하면 상품을 주는 행사이다. 물품이나 상품만 내가 준비하고 퀴즈나 운영 전체를 다 아이들이 맡아서 한다. 나보다도 더 방역에 신경 쓰며 꼼꼼히 준비하는 모습을 보면 너무 기특하다.
학급부서 운영, 아직 낯설다
나는 학창시절에 학급회의라고는 초등학교 때 몇 번 한 것이 전부이고, 그나마도 제대로 해본 적이 없다. 학급 회의하는 방법도 제대로 배운 적이 없어서 학급 회의라는 것이 너무 낯설고 어색하다. 다른 선생님들의 훌륭한 운영담을 듣고는 나도 해봐야지! 하고 마음을 먹어도 여러 가지 필수 교육에 치여 해볼 시간이 거의 없는 게 현실이다. 그래도 2학기 학급부서를 운영하면서,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은 부서별 운영 결과를 발표하고, 건의 사항을 반영한 앞으로의 계획도 간단히 발표하는 시간을 가져보리라 다짐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2학기 때만 현재까지 2번 운영. 아침 조회 시간에라도 짧게 운영해보리라 했지만, 그나마도 결석생과 지각생을 파악, 학급 안내 사항을 전달, 자가 진단 독촉, 교육 영상 시청 등을 하다 보면 10분이란 시간이 후다닥 지나가 있다. 매일 5분씩 일찍 들어가라고 안내해주는 친절한 방송멘트 덕을 보더라도 너무 빠듯하다고 하면 이건 변명…이 맞다. 학급 회의는 비록 2번밖에 못했지만, 그럭저럭 잘 돌아가고 있는 부서들이 있다. 하지만 아이들의 의견을 반영하여 현재 한 번 더 부서를 변경하는 중이다. 하던 부서를 그대로 하고 싶어하는 아이들도 있고, 다른 부서를 하고 싶은 친구들도 있어서 자유롭게 선택하도록 했다. 정식적인 학급 회의는 못하더라도 수시로 아이들의 의견을 듣고 피드백하여 수정의 수정을 거듭하고 있다.
올해가 얼마 남지 않았지만, 마지막까지 아이들에게 많은 걸 맡겨서 아이들이 스스로 꾸려나가는 우리 반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하고 싶다. 학년말에 아이들이 일 년 동안 뭘 했나- 하는 것이 아닌, 뭔가를 스스로 했다는 뿌듯함을 느낄 수 있는 일 년이 되길 바란다.
아마도 나는 내년에도 담임을 하고 있겠지만, 내년 우리 반은 올해보다 더 다듬어진 안정적인 학급으로 발전하리라 기대한다.
이지영
교실 속에서 아이들과 함께 성장하고 싶은 교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