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디지털 도구 활용기
문명현(이순신고등학교 기술 교사)
에듀테크 활용 수업 도입 계기
계기는 사소했습니다. 어느 날 같이 근무했던 옆자리 선생님께서 학생들에게 걷어서 모아놓은 수행평가 자료를 잃어버리신 일이 있었습니다. 이 글을 읽는 선생님들이라면 다 아시겠지만 상상하기도 싫은, 머릿속이 새하얘질 만한 최악의 상황이었습니다. 재차 수행평가를 본다고 하면 들어올 학부모들의 민원과 학생들의 원망, 관리자의 질책까지. 이 모든 상황을 상상한 담당 선생님께서는 패닉 상태셨습니다. 다행히도 교무실 선생님들이 하던 일을 내려놓고 발 벗고 나서주신 덕분에 잃어버린 자료를 다시 찾을 수 있었고, 아찔했던 해프닝이 마무리되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또 다른 계기는 학기 말에 학생부를 작성할 때였습니다. 학생들에게 걷은 수많은 평가지와 설문지 등 문서들의 물리적인 양이 상당했기에 방학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학교에 매일 같이 출근하여 일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미리미리 중간에 기록을 해놓을 걸….’이라는 자책(하지만 매년 반복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변하지 않나 봅니다.)과 더불어 제 머릿속에 든 생각은 “어떻게 하면 이 모든 자료를 노트북에 모두 넣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었습니다. 그게 가능하다면 시공간을 초월하여 내가 원하는 시간과 원하는 장소에서 일을 할 수 있고 분실의 우려도 없을 것 같은데 무슨 방법이 없을까? 라는 질문으로 나아가던 도중 공람함에 있던 하나의 공문을 발견하게 됩니다.
▲ 그 당시 받았던 공문
구글을 활용한 수업이라니! 그 당시 저는 다양한 교수·학습 방법에 대한 궁금증으로 이런저런 연수를 많이 신청해서 듣던 상황이었는데, ‘하브루타’와 ‘비주얼 싱킹’ 등 항상 비슷한 주제의 연수들에 조금은 질려있었습니다. 선착순 연수라기에 빠르게 신청 메일을 보낸 뒤, 연수 당일 수업을 미리 교체하고 조금은 들뜬 마음으로 먼 거리를 운전하여 연수를 들으러 갔고 그날 구글 공인교육자(GEG:Google Certified Educator) Lv.1 자격을 취득하고 돌아오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5년 전 당시 제가 보고 활용하며 체험했던 구글의 디지털 도구들은 접근성이 뛰어나고 누구나 손쉽게 사용할 수 있으면서도 선생님들의 수업과 일상을 보다 편리하게 바꿀 수 있을 것 같다는 강한 확신이 들었고 바로 구글을 활용하는 교육자들의 모임인 GEG(Google Educator Group) South Korea에 가입하여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이미 2018년 당시에도 관심 있는 선생님들과 일부 대학 교수, 연구자들이 알음알음 모여 다양한 활동을 하며 자료들이 꽤 축적되어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여러 가지 선행 연구 자료들과 수업 사례, 모임 선생님들과의 네트워킹을 통해 제 수업에 적용할 용기와 자신감이 생겼고, 천천히 도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 GEG South Korea 페이스북 페이지
에듀테크의 활용
제가 당시 재직했던 학교는 크롬북이나 태블릿 등 학생들이 수업 시간에 활용할 수 있는 도구는커녕 학생들의 스마트폰도 생활 지도를 위해 매일 수거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따라서 전면적인 LMS(학습 관리 시스템:Learning Management System) 도입은 어려운 상황이기에 교사의 노트북으로만 할 수 있는 퀴즈 도구나 간혹 학급 담임 선생님들의 허락을 받고 스마트폰을 잠시 나눠준 뒤 할 수 있는 활동들만 제한적으로 수업에 도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2020년 초부터 코로나19가 전세계적인 유행을 하게 되며 상황이 많이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글을 읽는 선생님들도 아시겠지만 코로나19는 우리의 일상뿐 아니라 교육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학교에 학생들이 올 수 없는 상황과 비대면 수업이 이어지며 아이러니하게도 에듀테크를 도입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기 시작했고, 다양한 에듀테크 도구 중에서 구글 워크스페이스(G-suite for Education)는 모든 교육 활동을 기록하고 관리하기에 적합한 시스템이기에 많은 학교에서 채택되어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 코로나 전인 2019년 구글 활용 수업을 하시던 선생님들의 분포도
결론적으로 말하면 코로나19 사태를 통해 앞당겨진 학교 디지털 혁신은 학교 업무 최적화와 선생님들의 수업에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우선 가장 좋았던 점은 종이의 낭비를 줄일 수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저는 천안의 공립 고등학교에서 기술 교과를 담당하는 교사로서 일주일에 1시간씩 13반을 모두 들어가는 상황이었는데, 서론에도 적었지만 저의 큰 고민은 아이들에게 종이를 1장씩만 받아도 400장이 넘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교과 세부 특기사항 입력을 위해 종이를 학생 1명당 몇 장만 받아도 1,000장이 훌쩍 넘어가기에 물리적인 공간을 차지한다는 점은 차치하고서라도 종이의 낭비가 엄청났습니다. 하지만 구글 클래스룸을 활용해 학생들의 보고서를 수합하니 종이를 절약하는 것은 물론이고 교무실 캐비닛 자리도 여유롭게 확보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두 번째로 좋았던 점은 학생들의 피드백을 즉각적으로 해줄 수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학생들이 낸 보고서와 발표 자료에 대한 첨삭이 실시간으로 이루어지고, 학생들의 질문에 시공간의 제약을 넘어 답변해줄 수 있다는 점이 학습자뿐 아니라 교수자에게도 매력적이었습니다. 교실 내의 다양한 학습자들의 수준을 맞추는 것이 많은 선생님들의 고민일 텐데, 수업 시간뿐만 아니라 편한 시간에 학생들에게 피드백을 줄 수 있다는 점이 선생님들의 고민을 다소 해결해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좋았던 점은 교사들 간의 협업을 좀 더 편리하게 할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비단 수업뿐만 아니라 학교 업무에서도 다양한 자료를 수합하고 정리하기에 에듀테크 도구는 많은 시간을 줄일 수 있게 도움을 주었습니다. 설문지부터 스프레드시트, 문서 등 여러 도구들은 선생님들이 빠르게 소통할 수 있도록 활용되었으며, 업무 담당자들의 시간을 아낄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학생들의 참여와 흥미
당시 에듀테크를 수업에 도입할 때, 제가 가장 우려했던 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아이들이 디지털 도구를 잘 활용할 수 있을까? 수업의 처음부터 끝까지 학생들을 챙기느라 시간이 허비되지는 않을까? 아이들이 전자기기를 다른 목적으로 사용하며 장난을 치진 않을까? 그러면 어떻게 통제해야 하지?”
아이들에 대한 믿음과 불신(?) 사이에서 반신반의하며 수업에 도입한 결과는, 물론 우여곡절이 있긴 했지만 성공적이었습니다. 아이들은 제 우려보다 훨씬 디지털 도구에 대한 적응이 빨랐으며, 심지어 제가 모르는 기능까지도 찾아내어 저에게 알려주기도 하였습니다.
에듀테크와 디지털 혁신에 관해 공부하던 중 이런 문장을 읽게 되었습니다.
“당신에게 기술이란, 당신이 태어났을 때 존재했던 기술을 말한다.”
학창 시절에는 2G폰을 사용하다 대학생 무렵부터 스마트폰을 사용하기 시작한 저와 같은 연배의 교사들보다 태어났을 때부터 다양한 스마트 기기들을 접하며 자라난 지금 학생들이 디지털 도구에 대한 이해도가 훨씬 높았으며, 앞으로 실생활에서 더 오래 사용하는 사용자인 만큼 적극적으로 수업에 도입하는 것이 바람직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아이들이 스스로를 통제하고 적절히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디지털 소양(디지털 리터러시)에 대한 교육도 강화해야겠다는 필요성 또한 느꼈습니다.
▲ 디지털 네이티브인 우리 학생들
구글의 LMS뿐 아니라 학생들의 협업을 도와줄 수 있는 다양한 도구(노션, 알로), 의견 수합 도구(패들렛, 퀴즈앤), 시각 콘텐츠를 쉽게 제작할 수 있는 도구(미리캔버스, 캔바) 등을 적절히 활용하여 수업을 구상하고 진행하니 학생들의 흥미도와 참여도가 높아지는 것을 경험하며, 다양한 교과의 선생님들이 융합 수업을 진행할 때도 같은 플랫폼을 사용해서 유기적으로 진행하면 무척 효과적일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학교 혁신의 한 방향으로 디지털 혁신이 이루어진다면, 무기력하고 학업 능력이 다소 떨어지는 학생들도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해봅니다.
▲ 필자의 구글 클래스룸 개설 목록
선생님들의 반응
에듀테크를 활용한 수업을 하며 가장 안타까웠던 점은 학교 안에도 디지털 기자재가 많은데도 활용하는 선생님이 적었다는 점입니다. 교육청의 디지털 혁신 의지가 강화되며 일선 학교의 관련 예산 지원도 늘어났는데 적게는 수십 대부터 많게는 수백 대의 태블릿 및 크롬북들이 사용하는 사람 없이 방치되어 있다는 점이 아쉬웠습니다. 그러던 와중 우연한 계기를 통해 교육청의 에듀테크 강사로 출강하게 되면서 단위 학교 선생님들에게 다양한 디지털 도구를 체험시켜 드릴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 다양한 연수에 출강한 모습
연수를 하러 가면 처음엔 조금은 지친 표정을 보이던 선생님들께서도 디지털 도구를 체험하고 활용해보면서 인식이 바뀌시는 걸 보며 큰 보람과 기쁨을 느낍니다. 사실 직접 해보면 정말 어려울 게 없는데도 막연한 두려움이나 혹은 저와 같은 걱정 때문에 선뜻 수업에 적용하지 못하는 선생님이 많습니다. 연수가 끝난 후 용기를 내어 수업에 활용해보시고 후기나 질문을 보내주시는 선생님들의 피드백을 보면서 학교의 디지털 혁신이 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결론
저는 결코 남들보다 뛰어나지 않은 평범한 교사입니다. 다만 운 좋게 다른 선생님들보다 디지털 도구를 조금 빨리 접했고, 이를 통해 일상이 많이 편리해지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이러한 경험을 선생님들과 공유하고 나누면서 선생님들의 삶이 조금이나마 편리해지셨으면 하는 것이 저의 작은 바람입니다. 이미 저보다 잘 활용하시는 선생님들도 많이 계시지만, 이 글을 읽는 선생님 중 아직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한 분이 계시다면 용기를 내셔서 조금씩이라도 디지털 도구를 활용해보셨으면 합니다. 위대한 교사는 위대한 학생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항상 배움의 꿈을 놓지 않는 선생님들, 존경합니다.
학교 디지털 혁신에 관심이 많은 평범한 교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