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웹툰’으로 구현하는 국어 수업
중학교 남학생들과 함께한 두 번의 슬기로운 학교생활 지침서 제작 프로젝트
송수현(서령중 국어 교사)
다른 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 습득하기
“선생님, 우리 학교 진짜 내년부터 남녀공학이 되나요?”
“그동안 여학생들은 학교 근처에 살아도 멀리 ○○중에 가야 했잖아. 이제 안 그래도 되겠다.”
“그래도 그동안 쭉 남학교였잖아요. 여학생들이 있는 서령중은 상상이 안 돼요.”
2023학년도에 우리 학교가 ‘남녀공학’으로 전환된다는 기사가 보도된 후 학교 분위기는 한동안 술렁거렸다. 1956년 개교한 이래 최초로 여학생들이 입학하는 학교가 된다니. 학교 구성원들은 쉽사리 이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남학교를 선호해서 일부러 자녀를 진학시킨 학부모도 있었고, 이제는 남학생들만 있는 학교가 더 편한 학생과 교사도 있었다. 당장 여학생 화장실도, 탈의실도 없고, 교실도 부족한데 어떻게 바뀔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을 품는 이들도 있었다.
“남녀공학이 되면 어떨 것 같니?”
“남자만 있어서 칙칙했는데, 여학생들이 오면 좀 밝아질 것 같아요.”
“아무래도 수행평가 점수는 남학생들이 여학생들보다 못 받을 것 같은데요.”
“여학생들이 진학하면 지금 없던 새로운 문제점이 생기겠지요.”
그동안의 학교 구성원들은 남학생들만 대해 왔던지라 아직 다른 이들 특히, 여학생과 공존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 ‘변화’를 ‘두려움’으로 맞이하지 않기 위해 일종의 ‘대비책’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이에 착안하여 2023학년도 변화하는 서령중의 모습을 예측하고 대비할 방법을 미리 마련해보기로 하였다. 당장 ‘여학생’과의 공존 방법을 배우는 것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결국 졸업 이후의 삶에서 ‘다른 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고 깨닫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변준우(학교의 변화를 준비하는 우리)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학교의 변화를 대비하기 위해 1학기에는 책 속에서 해답을 찾아 웹툰서평으로 표현하고, 2학기에는 학교 안에서의 실천 방법을 모색한 후 학교생활 지침서를 제작하는 흐름으로 한 해 프로젝트가 하나의 목표 아래 자연스럽게 연결되게 구성하였다.
이 중 ‘슬기로운 학교생활 지침서 만들기 프로젝트’는 2022학년도에는 ‘인성편’으로 진행되었고, 2023학년도에는 ‘환경편’으로 진행되었다. 이하에서는 2022학년도에 진행한 프로젝트에 대해 자세히 다뤄보고자 한다.
수업 속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인성 덕목 찾기
이 프로젝트에 임하는 2022학년도 3학년 학생들은 이듬해 변화하는 학교의 모습을 받아들이고 경험할 이들이 아니다. 그러하기에 학생들에게 왜 이 프로젝트가 필요한지, 프로젝트는 어떤 의미를 갖는지 명확하게 인식하게 할 필요가 있었다.
따라서 프로젝트 시나리오와 프로젝트를 안내하는 첫 시간에 힘을 주었다. 학생들의 흥미를 유발할 ‘문제의 출발점’ 제시, 인성 덕목의 필요성을 인식할 수 있는 퀴즈와 토론을 준비한 것이다.
학생들이 알만한 게임 중 ‘좀비 고등학교 학교생활’이라는 것이 있다. 자신이 직접 좀비고 학생이 되어 학교생활을 즐기는 콘텐츠인데 캐릭터와 같이 대화하거나 밥을 먹는 등의 교류를 할 수 있다. 수업을 들어서 능력을 키우고 학교에서 여러 가지 활동을 할 수 있지만, 궁극적인 목표는 ‘베프(절친)를 많이 만들기’이다. 게임 공략 방법도 이러한데 하물며 우리의 학교생활은 어떠할지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지며 프로젝트 시나리오가 담긴 ‘문제의 출발점’을 안내하였다. 교과목 공부도 물론 필요하지만, 다양한 사회의 구성원들이 더불어 살아가며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려면 배려하는 품성을 기르고 실천하기 위해 ‘인성 교육’이 필요함을 인식하게 한 것이다.
이어서 한 해의 프로젝트, 학기별 프로젝트를 안내하며 기대하는 마음을 품게 하는 시간을 가진 후 참여형 수업 플랫폼인 띵커벨을 사용하여 인성 교육 8대 핵심 덕목 종류와 개념을 정립할 수 있는 퀴즈와 8개 인성 덕목 중 우리 학교에서 실천할 인성 덕목 선택하기 위해 토론을 진행하였다. 이어서 닫는 시 이문재의 ‘어떤 경우’를 낭송하며 ‘한 사람이 한 사람을 부축한다는 것’의 의미를 찾게 하며 수업을 마무리하였다.
미리 준비하여 대비책을 마련해주는 선배가 지녀야 할 자세뿐만 아니라 곧 진학할 고등학교의 삶 또한 다른 이들과 함께 걸어야 하는 삶이라는 것을 알게 하고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깨닫게 하는 것이 바로 이 프로젝트임을 인식하도록 지도한 것이다.
성공적인 지침서 완성을 위한 발판, ‘모둠 세우기 활동’
다음으로 학생들은 인성 덕목별 실천 다짐을 쓰고, 인성 덕목 스파이 게임을 하며 인성 덕목과 친해지는 시간을 가졌다. 더불어 모둠 세우기 게임과 모둠 서약서를 작성하며 모둠원들과 끈끈한 하나의 팀이 되어가며 프로젝트에 임할 준비를 하였다.
모둠 구성 활동은 모둠장 지원자를 뽑거나 추천받은 후 모둠장이 꼭 같이하고 싶은 학생 한 명을 뽑도록 한 뒤 룰렛을 돌려 모둠원을 구성한다. 1학년 때부터 3학년까지 3년간 지도한 학생들이기에 절대 만나면 안 되는 조합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반드시 망하는 조합이거나 모둠장이 다루기 힘겨운 구성원만 모였을 때는 조정을 거치기도 하였다.
학생들은 나와 함께하는 긴 호흡의 프로젝트를 부담스러워하면서도 프로젝트 도입 활동 후 바로 이어지는 모둠 세우기 활동을 기대한다. 매년 진행한 모둠 세우기 게임의 재미를 알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제시어와 관련된 단어를 찾고 합심하며 외치는 ‘너도나도 게임’을 진행하며 모둠원들이 협력을 유도하였다. 모둠원 모두가 손을 들며 힘차고 신나게 단어를 외치는 모둠에 추가 점수를 부여했고, 모둠 세우기 활동 점수가 높은 순으로 우리 모둠의 인성 덕목을 정할 수 있게 하였다.
더불어 모둠원 역할 나누기, 모둠 서약서를 작성하는 시간을 가졌다. 모둠 세우기 활동은 프로젝트 진행 기간 중간에 포기하는 사람이 없도록, 싸우지 않고 평화롭게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관계가 될 수 있도록 하는 의미 있는 시간이다.
책에서 인성 덕목 발견하기
국어 교사인지라 프로젝트 수업 속에 좋은 작품 한 권을 온전히 읽은 후, 이를 바탕으로 국어과 성취기준과 프로젝트 목표를 달성하게 하는 활동을 꼭 넣는다. 이 프로젝트에서는 ‘책 속에서 인성 덕목 발견하기’ 활동이 바로 그것이다. ‘다른 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 습득’이라는 한 해 프로젝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해답을 독서로 찾을 수 있다고 보았고, 모둠의 인성 덕목이 우리 삶에서 어떤 의미를 가질지 계속적으로 생각하며 책을 읽게 하였다.
또한, 이 부분은 꼭 다뤄야 할 핵심 내용, 즉 성취기준과 관련된 활동이기도 하다. ‘읽기는 글에 나타난 정보와 독자의 배경 지식을 활용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임을 이해하고 글을 읽는다.’라는 성취기준을 달성하기 위해 학생들은 이 단계에서 예측하며 읽기도 하고, 모르는 단어나 문장의 의미를 파악하기도 하고, 글의 중심 생각을 추론하기도 하며 읽기 전‧중‧후 맞닥뜨리는 여러 문제를 해결하며 책을 읽어나갔다.
토론 과정을 통해 인성 덕목 실천의 필요성 찾아내기
‘토론 준비하기’는 토론의 논제를 정하고, 자신의 주장을 잘 나타내는 자료를 찾아 정리하고, 논제의 주요 쟁점, 주장과 근거 등을 정리하며 토론을 준비하는 단계다. 먼저 8대 인성 덕목을 비슷한 것끼리 예절‧효도, 정직, 책임, 존중‧배려, 소통‧협동의 5가지로 묶은 후 반마다 한가지 인성 덕목을 정하도록 하였다. 학생들이 실천한 인성 덕목이 어떤 행동으로 나타날지 마인드맵으로 그려보게 한 후 여기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토론 논제를 만들어 보게 하였다.
예를 들면 3학년 2반 학생들은 ‘예절‧효도’ 덕목과 관련지어서 모둠별로 토론 논제를 하나씩 만들어 보게 하였고, 그중 투표를 통해 ‘학교에서 옷차림이나 화장 등을 규제해야 한다’를 토론 논제로 삼았다. 학생들은 토론 논제와 관련된 자료를 찾아 정리하고, 주요 쟁점에 따라 주장과 근거를 정리하며 이어질 토론을 준비하였다.
‘토론의 실행과 평가’는 상대의 주장과 근거를 분석하여 논리적 허점에 대해 근거를 들어 토론을 진행하는 단계다. 한 토론 논제에 네 가지 쟁점에 따라 토론을 진행하였고, 모둠원 4명 중 두 명이 입론, 나머지 두 명이 반론하게 하였다. 학생들은 교과서에서 배운 고전적 토론 절차에 따라 반 학생들과 함께 선정한 논제로 토론을 진행하는 것을 퍽 흥미로워하였고, 교사인 나도 학생들의 열띤 토론을 지켜보며 흐뭇함을 느끼는 시간이었다.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웹툰’으로 구현하기
‘슬기로운 학교생활 지침서(인성편) 만들기’는 반 인성 덕목을 책의 소챕터로 삼아 우리 학교만의 생활 지침서를 웹툰 형식으로 만들어 보는 시간이다. 캐릭터, 주제, 줄거리를 이야기 구성에 딸 역할을 분담한 후 글콘티, 그림콘티를 작성하게 하였다. 1학기에 이미 ‘웹툰서평’을 제작해 보았기 때문에 학생들은 보다 수월하게 이 과정을 수행하였다.
이후 프로젝트 진행과정을 성찰하는 ‘성찰일지’를 작성한 후 교과 수업에서의 활동은 끝이 났다. 이제 본격적으로 책으로 엮는 작업이 남았다.
책쓰기 동아리 ‘한나들’과 함께 웹툰 단행본 제작하기
‘슬기로운 서령 생활 지침서’는 크게 두 가지 꼭지로 이루어져 있다. 하나는 2022학년도 3학년과 2학기 국어 수업 때 함께 진행한 ‘슬기로운 학교생활 지침서 제작 프로젝트’이고, 다른 하나는 한나들(한뼘으로 나를 들여다보다) 책쓰기 동아리다.
서령중의 책쓰기 동아리 ‘한나들’은 2019년부터 시작하였다. 2019년에는 이들과 함께 ‘한 뼘으로 나를 들여다보다’라는 소설집을 출간하였고, 2020년에는 차갑고 뜨겁게 뱉어내는 청소년의 감정을 담아 ‘우리들의 차갑고 뜨거운 열네 살’이라는 시집을 출간하였다.
2022년 ‘한나들’ 책 편집팀에게 처음에는 단순하게 수업 시간에 그린 웹툰을 모아 편집하는 역할을 부여하려 했으나 좀 더 많은 역할을 감당하게 되었다. 3학년 말 졸업을 앞둔 시기라, 생각보다 대다수 학생이 웹툰 그리기에 열의를 가지지 않았던 터라 웹툰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조치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한나들’ 책 편집팀은 캐릭터를 설정하고, 공모전 결과 뽑힌 아이디어를 정리하고, 인성 덕목에 기초하여 전체 대본을 작성하고, 표지 및 속지 일러스트를 그리는 등 많은 시간과 공을 들여 한 편의 웹툰 단행본을 완성하였다.
수업을 마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로젝트 수업
“만화 퀄리티가 장난이 아닌데요? 제 하루북 최고 책으로 선정! (*•̀ᴗ•́*)و ̑̑”
“너무 재밌게 봤어요. 적절한 개그랑 잘 합쳐져서 좋네요ㅋㅋ”
“그림 너무 잘 그리세요. 글이 인과관계에 맞게 잘 되어 있네요. 모두 중학생이고 아직 어린 청소년에 불과하고, 노력 그리고 협동의 끝으로 책을 만들어낸 것에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슬기로운 학교생활 지침서 다음편(환경편)을 제작하기 위해 책을 출간한 플랫폼에 오랜만에 로그인해보니 위와 같은 댓글이 달려 있었다. 책을 제작한 플랫폼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오늘의 책’으로 소개되었고, 이때 책을 접한 사람들이 읽은 소감을 적어준 것이었다.
이 내용을 학생들에게 보여주었더니 이 책을 한 번만 읽지 않고 계속 반복해서 읽는다면서 학급문고에서도 제일 잘 나가는 책이라고 말해주었다. 특히 1학년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다고 말해 줄 때 내 입꼬리가 슬쩍 올라가기까지 하였다.
이 책을 제작할 때 책이 사장되지 않고, 이듬해 재학생들(특히 신입생)의 지침서가 되어주기를 바랐는데, 그 의도대로 되었고 학생들의 삶에 실제 영향을 주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어 기뻤다. 더불어 학생들과 함께 만든 결과물이 학생의 노트 안에 쑤셔 박히지 않고 교실 밖의 청중들과 공유할 기회가 제공되었다는 것에 뿌듯함을 느꼈다.
긴 호흡으로 진행된 수업에서 교사도 학생도 지칠 때가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로젝트 수업을 꾸준히 진행하는 이유는 위와 같은 값진 경험을 얻었기 때문일 것이다. 비록 프로젝트 수업 n 연차 교사이지만 학생의 부담을 줄여 주면서도 교사와 학생 모두 즐겁게 임할 수 있는 프로젝트 수업 설계에 대한 정답은 아직 찾지 못했다. 하지만 수업 속에서 학생들이 생기를 찾고, 교실 밖에 청중들과 소통하고, 세상으로 나아가는 발견하는 의미 있는 프로젝트 수업을 설계하기 위한 고민을 계속한다면 마침내 그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선생님, 이번에도 프로젝트인가요.”
“그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도 프로젝트 수업이지!”
처음 교단에 섰을 때는 백지상태에서 열정만 앞섰던 터라 좋아 보이는 요소를 욱여넣은 수업을 구성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9년 차 교사가 된 지금은 단순히 전통적인 방식을 탈피한 새로운 형태의 수업만을 지향하지는 않습니다. 제 수업을 통해 학생들이 꾹 닫았던 입을 열고, 배움의 즐거움을 느끼고 마음이 일렁이는 순간을 경험하기를 바랍니다. 더 나아가 수업이 세상으로 나아가는 학생들이 발걸음에 조금이라도 힘을 실어줄 수 있기를, 세상으로 나아갈 길을 터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