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권’을 어떻게 정의해야 할까
이우경(온양여자중학교 국어 교사)
2023년 여름방학 직전, 한 초등학교 교사의 죽음으로 전국의 교사들은 비로소 참고 참았던 분노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조문 화환과 추모의 글로 가득한 교문 밖에는 “당신이 어쩌면 내일의 나일 수도 있다.”는 글이 붙어 있었습니다. 해마다 늘어나는 가르치기 힘든 아이들과, 그들로 인해 벌어지는 다양한 사건과 일부 학부모의 악성 민원 앞에서 교사들은 생존의 위협을 느끼고 있었던 것입니다. 자발적으로 모인 교사들의 구호는 너무나 단순해서 오히려 가슴이 아팠습니다. “학생들은 배우고 싶다, 교사들은 가르치고 싶다!”
뒤늦게 정치권과 교육 관료들이 대책이라고 내놓은 소위 교권 문제의 해법으로 제시하는 방안들이 전국의 선생님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공교육 정상화의 방향과 전혀 다르게 흘러갈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우려가 듭니다. 어쩌면 앞으로의 십여 년 사이가 교사가 전문가로서 ‘교육자’의 지위를 갖게 될 것인지, 옆 나라 일본처럼 ‘양육서비스 종사자’로 전락하게 될지를 가르는 중대한 기로가 될 것 같습니다. 지금이야말로 우리 교사들이 방향감각을 제대로 갖고, 공동의 실천을 하고, 필요한 정책과 제도와 법을 만들기 위해 공동의 목소리를 내야 할 때입니다.
그래서 ‘교권’에 대해 한번 역사적으로 그리고 교육적으로 깊이 살펴보려고 합니다.
‘교권’을 우리는 당연하게 ‘교사가 교육할 수 있는 권리’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교육할 수 있는 권리’는 누구로부터 나오며, 그것이 왜 교사에게 부여되는 것일까요?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시대적으로 변천해 왔으며, 실제로는 힘의 논리가 그것을 결정해 왔습니다. 그리고 그에 맞서는 교사들의 교육운동도 시대마다 역사적 사명을 달리하며 이어져 왔습니다.
일제 강점기에 ‘교권’이란 황국신민화를 위한 도구이며 식민 지배에 필요한 절대적인 힘의 일부였습니다. 일본인 교사들은 긴 칼을 차고 교단에 섰으며, 학생들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하기도 했습니다.
이에 맞서는 선각자 교사들은 교육을 통해서 빼앗긴 나라를 되찾으려 애썼습니다. 수많은 독립운동가를 길러내고, 농촌 계몽에 앞장서고, 해방 후에는 짧은 시간에 문맹을 극복하는 데 힘을 보태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분단과 이념 분쟁과 전쟁의 시기에 이들 중 많은 사람은 아깝게 희생되었고, 그들의 정신은 제대로 전수되지 못했습니다.
이승만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4.19 혁명 직후 “희생당한 학생들의 피에 보답한다”는 취지로 결성된 4.19 교원노조는 이듬해 5.16 쿠데타 직후 용공분자로 몰려 1천5백명의 교사들이 해직되었고, 간부급 교사 54명은 소위 혁명재판에 기소되어 10년에서 15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습니다. 너무나도 막강한 힘에 의해 탄압을 받은 이들의 정신과 노력도 제대로 전수되지 못했습니다.
개발독재 시절의 ‘교권’이란 ‘국가주의 교육’에서 주어진 권리였습니다. ‘국가주의 교육’의 이념은 박정희 독재정권 시절의 ‘국민교육헌장’에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모든 이상적인 단어들을 나열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자신들의 독재 정치를 정당화하고, 분단 체제에서 전 국민을 이념적으로 단합하게 만들며, 저임금의 장시간 노동에 견디며 저항하지 않는 순치된 국민을 기르기 위한 교육 이념이었습니다. 이 시기의 교육은 대량 생산에 필요한 대량 교육의 시대였고, ‘국가가 위임받은 국민을 교육할 권리를 교사에게 부여한 것’이 바로 이 시기의 ‘교권’이었습니다. 교사는 학생을 마음대로 훈육할 수 있었지만 절대로 건들 수 없는 것은 ‘교육 이념과 교육 내용’이었습니다. 대개 이 시절의 학교와 교사를 기억하는 이들이 학교와 교사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국민의 편에 서는 교육이 아니라, 독재 정권의 시녀로 살아야만 하는 교사들의 실존적 고뇌는 이후 ‘민중교육’지(교사들이 만든 교육계간지) 사건, ‘교육민주화선언’에 이어지는 80년대 교육 운동으로 계승되었으며, 전교조도 그 결과 결성된 교원노조입니다. 전국에서 1천 500명의 교사가 해직되고, 55명의 교사들이 구속되면서 결성한 전교조는 ‘교권’이 ‘민중의 편에서 그들의 아이들을 제대로 교육할 수 있는 권리’이기를 소망하며 출발했습니다. 이들은 사회 민주화와 교육 현장의 민주화에 일정 부분 기여하기도 했지만 이후 급격한 세계화와 기술 발전의 시대에 방향을 잡지 못하고 미래의 변화에 필요한 교육적 실천과 노력을 하지 못하고, 교육운동의 본래의 소망과는 동떨어진 ‘노동자로서 교사의 권리’를 ‘교권’으로 편협하게 인식하면서 대다수 국민의 지지를 잃어갔으며, 이후 교사를 개혁 대상으로 몰아붙이는 언론과 정치가들에 의해 힘을 잃었습니다.
국가주의 교육의 시대가 끝나고 이제 비로소 본래의 교육, 아이들에게 세상과 자신을 올바로 인식하고, 그 당당한 구성원으로 살아가도록 가르치는 교육에 대해 바닥부터 새롭게 정립해 나아가야 할 시기가 도래했건만 진정한 교육개혁의 논의에서 교사들은 주체가 되지 못했습니다. 미래 인재를 키워내야 한다느니, 수요자 중심의 교육을 서비스해야 한다느니 경제 논리와 정치적 셈법에 휘둘리며 중심을 잡지 못한 채 이십 년 가까이 표류했습니다. 언론은 수시로 교사들을 무능하고 신뢰할 수 없는 집단으로 까대고, 교육개혁을 한답시고 탁상에서 만들어진 수많은 업무는 과거의 업무들 위에 그대로 쌓여 교사들은 뒤를 돌아볼 새도, 잠시 멈추어 생각해볼 새도 없이 떠밀려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서툰 부모와 불안정한 아이들이 늘고 있는 현재의 중요한 교육 문제를 인지하지 못하고, 제대로 공동의 대처를 하지 못해 학교를 양육서비스 기관, 교사를 양육서비스 종사자로 여기는 작금의 사태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교사들이 부닥친 참담한 현실은 단지 ‘교권’의 문제가 아니라, 보다 본질적이고도 근원적인 문제에서 시작한 것입니다. 인간의 아이는 덜 완성된 뇌를 가진 채로 태어나, 부모와 주변 사람들의 뇌와 연결해 따뜻한 보살핌과 사랑과 균형 잡힌 양육을 통해 무수한 뇌신경망을 스스로 연결하며, 뇌의 구조와 기능을 완성해 나가게 프로그래밍 되어 있습니다. 잘 양육된 아이들이 안정된 내면과 자기 조절 능력, 도덕적 경계와 소통 능력을 갖추고, 목표를 추구하는 자기 동기화가 가능한 사람으로 성장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일제 침략, 한국 전쟁, 빠른 사회 변화와 경쟁, 외환 위기로 인한 가족 해체와 양육의 외주화 등의 근현대사를 겪는 동안 우리가 아이를 잘 기를 수 있는 근본적인 사회적 토대를 무너뜨리고, 우리를 부모로 살아가게 하는 모든 무형의 문화 자산을 내다 버리게 되었습니다. 서툰 부모는 늘어가고 그에 따라 가르치기 힘든 불안정한 아이들이 해마다 늘어나고 있습니다.
오늘날 교사들을 힘들게 만드는, 다양한 문제행동을 하는 아이들과, 수많은 교사들에게 치명적 내상을 입히고, 조기 정년으로 학교를 떠나게 만들고, 정신과 진료를 받게 만드는 학부모 민원은 같은 원인으로부터 시작한 사회 현상이며, 이 나라의 모든 어린이집, 유치원, 학교의 교사들이 최전선에서 직면하고 있는 문제입니다.
아이를 함께 키울 수 있는 공동체는 사라지고, 교육에 대한 공적 인식이 무너지고, 학교가 양육서비스 기관으로 전락해버린 상황 속에서 ‘교권’의 의미를 제대로 정의하고 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며, 법제화하는 것은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합니다. 그것은 단지 교사들의 권리와 이익 차원이 아니라, 이 사회가 앞으로 아이들을 어떻게 기르고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에 대한 합의와 교육적인 지향을 올바로 세우는 것과 깊은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초저출산의 시대, 부모가 되는 것을 삶의 기쁨과 의미가 아니라 엄청난 희생과 고통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시대, 인구 절벽이 시작되었건만 그나마 낳은 아이도 제대로 기르고 가르칠 수 없는 시대에 교육 문제의 지형은 엄청나게 변화해 버렸습니다. 아이를 잘 기르고 가르치는 일은 이제 단지 누군가의 수요나 정치적 셈법에 좌우되어선 안됩니다. 이 문제가 실제 우리 사회 전체의 지속과 계승에 관한 절박한 문제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아이를 잘 기르고 가르치는 일에 관한 한 진보와 보수가 따로 있을 수 없습니다. 교실의 불안정한 아이들은 곧장 사회로 나오게 됩니다. 이들은 우리 사회의 안전을 위협하거나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필요로 하게 만들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제 오히려 정치의 논리나 경제의 논리가 아닌 본질적인 교육의 논리로 생각하고 노력하며, 세력을 형성하고 목소리를 내야 할 때가 왔습니다. 이제라도 본질적인 교육의 논리로 ‘교권’을 새롭게 정의하고 확립하며, 법령으로 명시할 필요도 있습니다. 다만 교사들이 바라는 ‘교권’은 결코 저절로 얻어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다소 긴 싸움이 필요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교육은 본래 세대교체에 관여하는 일입니다. 부족공동체 시대부터 인류의 조상들은 앞선 세대의 가장 가치 있는 삶의 경험과 기술을 전수하고, 공동체의 미래를 위해 헌신할 수 있는 마음을 갖도록 아이들을 가르쳤습니다. 당시의 교육은 대개 존경받는 부족의 원로들이 담당하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본질적으로 교육은 인류가 이루어놓은 지식과 경험, 문화와 정신의 정수를 전하고, 미래의 세상을 살아갈 기술을 전수하며, 공동체의 미래에 의미가 있는 삶을 자신의 삶의 방향으로 받아들이도록 가르치는 일을 담당해야 합니다. 교육은 공동체의 지속과 계승, 발전에 기여하는 일이기에 공적인 것이며, 소수의 이해관계나 권리만을 주장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교권’ 즉 ‘교사가 교육할 수 있는 권리’는 ‘공동체의 동의와 암묵적 지지에서 나오는 힘으로 교사에게 부여된 가르칠 수 있는 권한’이라고 정의해야 할 것입니다.
교권이 ‘공동체의 동의와 암묵적 지지에서 나오는 힘으로 부여된 가르칠 수 있는 권한’이라면, 이러한 합의를 바탕으로 먼저 교육에 대한 공적 인식을 확립하고 아이들을 기르고 가르치는 일에 관한 우리 사회의 공동체성을 회복하는 것이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이 일에 절박한 이해관계가 걸린 사람들은 정치가나 교육 관료가 아니라 이 땅의 모든 교사와 부모들입니다.
만약 지금 다시 ‘교권’을 ‘직업인 교사로서의 권리’로 편협하게 인식한다면, 또다시 국민적 관심이나 지지를 잃고 ‘양육서비스 종사자’로 스스로를 규정하게 만드는 오류를 되풀이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또한 학부모를 교육에서 배제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막으려는 쪽으로 정책과 법제화를 주장한다면 결코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가 없게 될 것입니다. 아이들 기르고 가르치는 일에 교사와 부모는 한편이 되어야 합니다. 학부모를 모두 잠재적인 악성 민원인으로 적대시한다면 학부모들의 이익단체와 교사들이 힘으로 맞서는 결과를 맞이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교사들은 그 싸움에서 결코 우위를 점할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학부모를 교육에 끌어들이고, 그들과 협력하여 아이들을 제대로 기르고 가르칠 수 있는 방향으로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문제행동을 하는 아이들과 민원으로 교육을 방해하는 부모들을 제대로 도울 방안을 주장하고 정책과 법제화를 요구하며, 공교육의 정상화를 바라는 학부모들과 연대하며, 그들이 일부 서툰 부모들의 과도한 요구와 민원을 제한하고 교사들을 지키며, 교사들과 협력하여 서툰 부모와 그 아이들을 함께 도울 수 있도록 학교 공동체를 재건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또한 인간의 아이를 제대로 기르고 가르치는 일에 관해 교사가 전문가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수업뿐 아니라 인간의 아이가 어떤 상황과 관계 속에서 잘 배울 수 있는지, 불안정한 아이를 어떻게 가르칠 수 있으며, 부모와는 어떻게 역할 분담을 할 수 있는지에 관한 전문가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힘겨운 길이 되겠지만, 충분히 함께 풀어갈 수 있는 문제일 것입니다. 노력하면 할수록 교사로서 존경받으며 인정받는 길이 될 것입니다. 적어도 지난 시대의 선배 교사들처럼 간첩으로 몰리거나, 파면을 당하고 감옥에 가는 일을 당하게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학부모 민원청으로 전락한 교육청과, 두려움에 움츠리고 무사안일을 바라는 교육 관료와 행정가들에 기대할 것은 어차피 거의 없습니다. 교육이 여전히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이며, 그것이 나의 삶의 의미가 되기를 원하는 교사들이 각성하고, 단합하고, 행동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