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연재]제대로 화내기 프로젝트 제5화
6-9차시: 세상을 바꾸는 사회 비평문 쓰기
박준일(온양여자고등학교 국어교사)
*속도와 꾸준함이 생명이라고 생각하고 쓴 수업일기입니다.
앞으로 시간 여유가 생길 때마다 수업 장면을 기록하고 연재하겠습니다.
1. 좋은 사회 비평문은 어떻게 써야 할까?
1-1 좋은 사회 비평문에 대한 교사의 고민
교사가 직접 해보지 않은 일을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것은 참 고역이다. 학생들이 해야할 과제를 직접 경험해봤다면 '선생님이 해보니 이러저러한 것들이 중요하더라.', '선생님이 해보니 이런 어려움이 있었는데 이렇게 저렇게 해결할 수 있더라.'라고 자신있게 이야기해줄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조악한 것들이지만 시, 소설, 수필, 감상문, 서평은 써봤어도 사회 비평문을 써 본 경험은 없다. 그래서 우선 직접 비평문을 써봤다(이 글도 조악한 건 마찬가지). 이 과정을 거쳐야 학생들이 글을 쓰다 어려움을 만났을 때 진짜 도움이 되는 피드백을 줄 수 있다.
좋은 비평문을 많이 읽어 보는 것도 중요하다. 천천고 김영희 선생님이 추천해주신 강남규 평론가의 책 <지금은 없는 시민>과 김영희 선생님이 지도한 학생들이 쓴 글들을 읽으며, 좋은 비평문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생각을 정리했다. 좋은 글을 쓰는 '방법'과 관련해서는 이재성, 정희모의 <글쓰기의 전략>, 박용주의 <생각은 어떻게 글이 되는가> 이 두 권을 가장 많이 참고했다. 물론, 국어과 교과서나 지도서에도 이런 내용들이 보기 좋게 정리된 자료들이 있는데, 교과서에 있는 글들은 복잡한 세상을 이해하기 쉽게 정돈해 놓은 것들이라 개인적으로는 생생함을 느끼지 못한다. 학생들에게도 원래 세상은 정답으로 이루어지지 않은 복잡한 거라는 걸 알려주고 싶고, 이렇게 복잡한, 정답을 찾을 수 없는 세상을 어떻게 하면 지혜롭게 살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비평문 쓰기에 대한 채점기준표를 만들었다. 좋은 채점기준표를 만들기 위해 교사는 학생들에게 모델이 될 좋은 결과물들을 가져다 놓고 '좋은 OO이란 무엇이지?'를 고민해야 한다.
학생들이 좋은 비평문을 쓰기 위해 고려해야 할 요소는 5가지인데, 1. 무엇이 문제이고 그 문제의 원인은 무엇인지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분명하고 이해하기 쉽게 서술해야 하고, 2. 자신의 생각을 뒷받침할 수 있는 이치에 맞으면서 구체적인 근거들을 제시해야 하고, 3. 자신이 보고, 듣고, 경험한 일과 글에서 제시한 문제와의 관련성을 드러내 이 문제가 우리의 삶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를 전달해야 한다. 또 4. 구성 면에서 글이 서론-본론-결론으로 나눠져 있고, 하나의 주제로 논지의 일관성을 갖춰 서술해야 한다. 5. 1~4를 다 잘 갖췄다면 분량은 자연스럽게 충분해진다.
1-2 좋은 예시 글 일기
이제 학생들이 사회 비평문이 무엇인지, 좋은 사회 비평문이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해야 한다. 학생들은 또래 학생이 쓴 사회 비평문을 읽고, 이 글들을 내가 만든 채점기준표에 따라 채점해봤다. 그리고 왜 이 글이 좋은 글인지, 아쉬운 글인지에 대해 교사와 함께 이야기했다.
[A]글과 [B]글은 모두 같은 학생이 쓴 글이다. [A]글은 학생이 쓴 초고이고, [B]글은 영희샘의 피드백을 받은 후 쓴 최종 글이다. 학생들과 두 글을 읽으면서 사회 비평문(논증하는 글)의 기본 구조를 분석했다. 서론에서는 문제의 배경을 이야기하고, 본론에서는 주장과 근거, 근거를 뒷받침하는 세부 근거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결론에서는 앞에서 이야기한 핵심을 요약해서 강조하거나, 독자들이 깊이 고민 볼 질문을 던진다. 무조건 비평문을 이런 형식으로 써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것이 가장 보편적인 방법이다.
그리고 채점기준표를 바탕으로 [A]글과 [B]글을 비교해봤다. [A]글은 아쉬운 점들이 있는데, 내용 측면에서는 자신의 주장에 대한 근거로 잠깐만 인터넷을 검색하면 찾을 수 있는 내용들을 들었다. 글을 이렇게 쓰면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사회 비평문은 독자의 행동을 변화시키기 위해 쓰는 글인데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으면 누가 썼느냐와 상관 없이 글쓴이가 꼰대처럼 느껴질 수 있다. 학생들은 문제에 대한 전문가가 아니니 이들의 글은 더 그렇게 느껴질 가능성이 크다. 이걸 하기 위해서는 [B]글처럼 문제에 대한 자신의 경험과 그때 느꼈던 생각과 감정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면 좋다. [B]글을 읽는 독자는 나도 모르게 글쓴이와 비슷한 나의 경험을 떠올리면서 문제의식에 공감하게 된다. 형식 측면에서 [A]글은 서론-본론-결론이 제대로 나눠져 있지 않다. 글의 짜임이 제대로 되어야 독자들이 글쓴이의 생각과 논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렇게 비평문 예시를 분석한 후에는 사회 비평문에 대한 정의를 내려봤다. 비평문은 독자들이 어떤 대상이나 현상을 정확하게 바라보게 하기 위해 쓴 글이다. 문제에 대한 해결방안을 내놓지 않아도 좋다. 영화 비평문은 특정 관점에 따라 영화를 정확하게 보게 하기 위해 쓴 글이고, 소설 비평문도 마찬가지다. 사회 비평문은 '사회 문제를 정확히 바라보게 하기 위해 주장과 근거를 들어 그것의 가치를 평가하고 판단하는 글'이다.
2. 비평문 개요 작성하기
2-1 과정 중심 글쓰기의 이유
고3 2학기 수업이라 시수 여유가 없지만 그래도 최대한 과정 중심 글쓰기를 경험할 수 있었으면 했다. 글쓰기 능력이 타고난 사람들은 '계획하기-내용 생성하기-내용 조직하기-초고쓰기-고쳐쓰기'의 회귀적 단계들을 거치지 않아도 바로 좋은 글을 쓸 수 있다. 실제로 나의 페친 선생님 중에는 글쓰기를 이렇게 단계를 나눠 가르치는 것을 비판적으로 생각하시는 분도 있다. 이 선생님은 자신의 글쓰기 경험을 들어 글쓰기를 단계적으로 끊어서 가르치면 '읽을 만한 정도'의 글을 쓸 수는 있지만 '뛰어난' 글을 쓰기는 어렵다고 이야기하셨다. 나는 좀 다르게 생각한다.
나는 지금도 그렇지만, 처음엔 더 글을 못쓰는 학생이었다. 초등학생 때 독후감 쓰기 대회를 하면 글 쓰는 게 너무 어려워 그냥 읽은 책을 그대로 베껴서 제출하곤 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 글쓰기의 방법에 대해 제대로 가르쳐준 선생님이 내 기억으로는 없었다. 그냥 글쓰기 과제를 주고 언제까지 써와라 할 뿐이었다. 잘썼다, 못썼다 하는 피드백도 없었다. 그러다 6학년 담임 선생님과의 1:1 지도(정확히는 나머지 공부)를 통해 글쓰기를 배웠는데, 이 선생님은 내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다른 친구가 쓴 좋은 글을 모델로 제시하고, 내가 그것을 모방해 글쓰기 단계를 거치며 완성된 글을 쓸 수 있도록 지도해주셨다. 이때 글쓰기에 대한 '아하!'의 경험을 할 수 있었고, 그 이후로는 글쓰기 대회에 나가면 항상 1, 2등을 하고, 대학생 때에는 내가 쓴 영화 감상문들을 본 어떤 교육학과 교수님께 '자네 작가가 되어봐도 좋겠어.'라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우리가 교실에서 만나는 학생들 중엔 글쓰기에 천부적 재능이 있는 학생보다 교사의 도움이 필요한 학생들이 훨씬 많다. 국어 교사의 목표가 뛰어난 글을 쓰는 멋진 작가를 길러내는 것은 아니다.
2-2 비평문 개요 작성하기
글을 쓰기 위한 내용을 생성하는 방법은 참 다양한데, 학생들은 이미 모둠원들과 책대화를 통해 충분히 발산적 사고를 했다. 그래서 바로 핵심 주제를 정하고, 개요를 작성하는 단계로 넘어갔다.
개요를 짜기 전에 핵심 메시지를 한 문장으로 작성하게 한 것은 우리가 글을 쓰거나 말을 할 때 쉽게 범하는 '핵심 놓치지기의 오류'에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혹시 학생들 중 계속해서 '핵심 놓치기의 오류'에 빠지는 학생이 있다면 조엘 슈월츠버그의 <요점만 말하는 책>을 읽어보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학생들이 써야 할 활동지에는 도움말들을 비계로 넣어놨다. 서론과 본론과 결론을 각각 어떤 내용과 흐름으로 구성하면 좋을지, 인상깊은 글을 쓰기 위해 어떤 표현들을 활용할 수 있을지를 안내했다. 이 내용들은 1학기 화법과 작문 시간에 이미 학습한 내용이기도 하다.
30분 동안 학생들이 개요를 짜서 나에게 가져오면 나는 학생들과 질의응답을 하며 피드백을 제공했다. 피드백을 줄 때 가장 중요시했던 부분은 주장과 근거, 세부 근거들이 서로 어울리는가?, 구체적인 경험을 떠올렸는가? 인상적인 표현 전략을 구상했는가?였다. 시간만 있다면 가장 효과가 좋은 피드백은 학생과 과제에 대해 함께 대화하는 구두 피드백인 것 같다. 서면 피드백을 하면 학생의 과제에 대해 궁금한 게 있어도 질문에 대한 답을 얻기가 어렵고, 피드백을 쓰고 읽는 맥락이 달라 오해가 생기는 경우가 많은데, 구두 피드백 상황에서는 천천히 질문해 나가면서 학생 스스로 문제점을 찾고, 해결방안을 고민하게 할 수 있다.
3. 세상을 바꾸는 사회 비평문 쓰기
1시간 동안 A4 용지 1쪽 분량의 사회 비평문을 썼다. 그리고 나는 학생들이 쓴 글을 읽고 색깔 볼펜으로 서면 피드백을 남겼다. 피드백을 줄 때에는 수행평가 채점기준표의 요소들을 고려했다. 성취기준이나 평가요소와 관련없는 것들(예를 들어 글씨체)에 대한 피드백을 주면 학생들은 무엇이 중요한 문제인지를 놓칠 수 있다. 피드백을 줄 때 학생의 능력을 고려해서 '적당한' 양의 피드백을 주는 것은 항상 쉽지 않은 일이다.
지금 당장 손에 잡히는 글 몇 가지를 소개한다. 학생이 쓴 글 그대로를 옮겨 놓았기 때문에 조금 더 보완했으면 하는 지점들도 보인다.
사회가 요구하는 '원트'에 짓밟힌 우리의 '라이크'
우리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 예를 들면 취미나 흥미 같은 것을 기준으로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가? 아마 대부분의 사람이 "음~ 아닌 거 같아."라고 대답할 것이다. <코로나 사피엔스>는 "사회가 요구하는 원트가 아닌 라이크가 나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 책에는 '원트'와 '라이크'가 나오는데 원트는 사회가 우리에게 원하고 요구하는 것, 라이크는 말 그대로 내가 좋아하는 것을 뜻한다. '라이크'를 기준으로 살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니 행복감도 높아지고 그 분야의 전문성 또한 높아질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정말 '라이크'만을 기준으로 살 수 있을까?
우리는 항상 사회로부터 '원크'를 강요받아왔다. 학생의 경우 원치 않는 공부를 예로 들 수 있겠고, 사회가 원하는 성 역할도 하나의 예가 될 수 있겠다. 물론 본인이 원해서, 목표를 이루기 위해 공부하는 학생들도 있다. 하지만 만약 우리 사회의 분위기가 학력을 병적으로 중시하지 않았으며, 본인이 원하는 일을 응원해뒀다면 대부분의 학생들이 공부라는 길을 선택할까? 아마 아닐 것이다. 내가 좋아하지 않아도 주위 사람들이, 부모님이, 사회가 요구하기 때문에 공부를 선택한 아이들이 훨씬 많다. 또, 학생들은 매일 경쟁을 하며 살아간다. 이 치열한 경쟁을 부추기는 말, "고등학교 가면 친구들은 다 너의 경쟁자야.", "정리 노트 절대로 보여주지 마.", "옆집 애는 이번 시험 100점이라던데 너는 왜 그러니?" 같은 말을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여기서, '나는 라이크를 잘 추구하며 사는 것 같은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럼 질문을 하나 하겠다. 당신은 당신의 라이크를 '다르다'가 아닌 '틀리다'라고 매도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도 그 라이크를 계속 기준으로 삼을 수 있는가? 글쎄 바로 대답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현재는 과거에 비해 개인의 취향과 개성이 존중되는 사회라고 한다. 하지만 과거에는 어땠는가? 우리 부모님과 조부모님 세대에는 개인이 존중되지 않았다. 사회의 요구를 충족하기 위한 '사회의 일원'이었을 뿐이다. 우리 엄마도 자동차 정비일을 배우고 싶었지만 여자라는 이유로 공고에 가지 못했다고 하셨다. 이렇게 개인의 '라이크'가 존중되지 않는 사회라면 우리가 '라이크'만을 기준으로 살 수 있겠냐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원트'만을 강요할 뿐, '라이크'를 기준으로 삼을 기회를 주지 않는다. 아마 모두가 라이크를 기준으로 삼고 싶겠지만 정작 그 '라이크'를 찾을 기회조차 부족한 게 현실이다. 그러나 언제까지 원트만을 강요받고 살 수는 없지 않은가? 우리가 라이크를 알아가고, 기준으로 삼기 위해서는 무엇이 선행되어야 할까? 일단 개인의 라이크를 '틀리다'가 아닌 '다르다'로 이해하고 존중해 줄 사회적 분위기가 필요하다. 또한 자신의 라이크가 무엇인지 충분히 탐구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 또한 필요할 것이다. 우리가 먼저 인식을 바꾸고 다른 사람의 사이크를 존중하며 우리 자신 또한 진정한 나의 라이크를 기준으로 살아가길 바란다.
- <코로나사피엔스>를 읽은 온양여고 학생의 글
배달노동자들의 고된 노동의 원인은 우리에게도 있다
쿠팡맨은 성과 기준으로 하루 물량 140 가구 정도를 요구받고 있다. 이는 하루에 처리하기에 많은 물량으로, 배달노동자들이 과로를 하거나 사고를 당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 또한 노동자들이 고강도 근로로 정규직 전환 이전에 그만두면서 '정규직 채용률 90%'라는 이상한 착시 현상이 일어났다. 그렇다면 과로의 원인은 과연 누구에게 있을까? 과연 우리는 고용주에게 모든 책임을 돌릴 수 있을까?
로켓배송, 새벽배송 등 점점 배달 속도는 빨라지고 있다. 빠르면 오전에 주문해,오후에 받거나, 다음날 받아 볼 수도 있다. 빠른 속도를 처음 경험했을 때는 그 대단함에 놀랐다. 이 속도에 적응하게 되면 배송기간이 3~4일인 경우 뭐 이리 늦나 싶다. 그리고 이런 배달 속도는 리뷰를 통해 평가된다. 한 번은 어떤 상품을 목요일에 주문한 적이 있다. 토요일이면 받을까 싶어 주문을 했지만 그 다음주가 돼서야 받을 수 있었다. 쉬는 날인 주말을 빼면 3~4일 정도 걸린 것이지만 왜이렇게 택배가 늦는지 의문이 들었다. 사실, 주말에 휴식은 당연할 수 있는 것임에도... 이처럼 배달 속도는 고객의 평가와 연결되어 있고, 회사가 다른 회사와 경쟁하기 위해서는 배달 속도를 높여야 한다.
배달 속도를 높이는 것은 택배 기사의 일이 되었다. 택배 기사에게 더 빠르게 많은 상품을 배달하길 요구했고, 그것이 택배 노동자들을 과로하게 만들었다. 아마 여기서 많은 사람들이 고용주에게 책임이 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직원을 늘리고, 그 물량을 나누어 일의 강도를 줄여야 한다고 말이다. 하지만 난 우리가 이 문제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야 한다고 느낀다. 빠른 배송을 요구하는 것은 결국 고객이었다. 고객이 배달 속도에 조금만 너그러워진다면, 이 문제를 더 빠르게 해결할 수 있다. 고객이 하루, 이틀 배달이 늦어져도 있을 수 있는 문제로 생각한다면 고용주도 택배 기사에게 더 빠르게, 많이 배송하지 않도록 해줄 것이다.
택배 기사의 과로 문제는 해결되어야 한다. 이 원인은 많은 처리 물량에 반해 적은 수의 직원을 고용한 고용주에게 있다. 그래서 고용주가 직원을 늘려 개인 당 처리 물량을 줄일 필요가 있다. 노동의 가치를 존중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도 택배를 더 빠르게 받길 원하고 있었다. 즉 우리도 원인 제공을 하고 있었다. 우리도 이 문제 해결을 위해 택배 배송을 재촉하지 말아야 한다. 기다릴 수 있다면 기다려 줄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를 위해서 빠른 배달을 위해 수고하시는 택배 기사 분들을 위해 '감사합니다' 한 마디 건네자.
- <뭐든 다 배달합니다>를 읽은 온양여고 학생의 글
사람은 사람다운 것으로 충분하다
이번 2022년 도교 올림픽은 여로모로 논란이 많았던 올림픽이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을 꼽아보자면 나는 안산 선수의 금메달 박탈을 촉구했던 사건이라 생각한다. 단순히 머리 길이가 짧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한 사람을 무차별적으로 매도하고 폭언을 내뱉는 이 행위는 페미니스트들에 대한 원색적인 혐오로 인해 이루어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 우리 사회는 사람에게 사람다운 것이 아닌 '여성스러움' 또는 '남성스러움'을 강요하는 것일까?
어릴적 나는 치마보다 바지가 편했고, 분홍색보다 파란색이 좋았고, 여기저기 뛰노는 것이 좋았다. 이 때문에 몸 곳곳에는 크고 작은 흉터들이 자리잡고 있다. 이런 것들은 지금도 나를 자유롭게 한다. 하지만 나는 사회의 눈치를 보게 되었다. 확실히 과거의 내 모습은 지금의 내가 보기에 사회에서 생각하는 '여성성'과는 거리가 멀다. 세상에 나와 같은 사람이 얼마나 더 있을까. 사회의 젠더 고정관념은 고인 물일 뿐이다. 성에 대한 고정관념은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고 획일화된 사회를 만들게 된다.
이 모든 것은 인간이 인간에게 프레임을 씌우고, 그 밖의 것들을 배척했기 때문이다. '남자가 뭘 이런 것 가지고 울어?', '여자는 집안일이나 해야지' 등 우리가 우리에게 씌운 프레임은 어느새 우리 삶에 녹아 들었다. 그 어떤 누구도 암컷 새에게 여성스러움을, 수컷 새에게 남성스러움을 강요하지 않는다. 성별은 그저 생물학적인 기초 분류일 뿐이지, 한 사람의 인생을 좌지우지할 만한 힘을 가지고 있지 못한다. 성별이 우리의 삶을 뒤흔들도록 만든 것은 우리들이었다.
여성스러움이나 남성스러움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 사이의 우열도 존재하지 않는다. 차이를 이해하고, 배려하며, 존중으로 간격을 좁혀나가야 한다. 푸른색을 좋아하는 여자도 여성이며, 감수성이 풍부한 남자도 남성이다. 본질적인 성별은 변하지 않는다. 푸른색을 좋아하는 것도, 감수성이 풍부한 것도 모두 그들 자신만의 특성이다. 개개인의 자아가 '여성성'이나 '남성성'에 묻히지 않길 바란다. 우리는 모두가 자기 자신에게 떳떳하고 자랑스러워야 한다. 사람은 그저 사람다운 것으로 충분하다. 이 당연한 사실이 당연한 내일이 오길 바란다.
- <그건 혐오예요>를 읽은 온양여고 학생의 글
4. 성찰과 축하로 프로젝트 마무리하기
내가 수업을 설계할 때마다 속으로 되뇌는 말이 있다. 배움은 경험 그 자체가 아니라 경험에 대한 성찰에서 일어난다는 듀이의 말이다. 내가 이 글을 쓰는 가장 큰 이유도 이것이다. 수업을 복기하고, 긴 시간을 들여 글을 쓰는 과정에서 무엇이 부족했고, 무엇이 잘 되었는지에 대한 성찰과 배움이 일어난다.
프로젝트의 끝에 축하의 시간을 갖는 이유는 학생들이 학교를 떠난 이후에도 프로젝트에서 경험한 것들을 자신의 삶 속에서 실천하길 바라기 때문이다. 우리가 교실에서 수행한 것들이 큰 의미를 가지고 있고, 우리의 고생이 헛되지 않았음을, 그 긴 시간 배움을 지속한 우리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생각해도 된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 그럼 내가 볼 수 없는 곳에서도 우리 삶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업 시간에 배운 것들을 나도 모르게 활용하고 있지 않을까.
성찰하기와 축하하기의 방법은 매우 다양하나, 나는 이벤트에 참 미숙하다. 혼자 노는 것은 좋아해도 여러 사람과 어울려 노는 것에는 부끄러움이 많다. 이 시간을 성대하게 마무리하고 싶은데, 용기를 내지 못한다. 이번에도 성찰과 축하는 매우 조용하게 이루어졌다.
이 프로젝트의 시작은 '익명의 사회비평가의 영상 편지'였다. 그래서 끝도 익명의 사회비평가라는 장치를 활용했는데, 학생들의 글에 쓴 나의 피드백을 학생들에게는 '익명의 사회비평가님'이 직접 읽고 달아준 피드백이라고 이야기했다. 당연히 고3 아이들은 다 알고 있다. 내 손글씨인 것을... 그러나 모두가 다 아는 거짓말을 하면 웃음이 나고, 나도 모르게 마음 한 켠에는 '진짜인가?'라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학생들은 이 비평가의 피드백을 기쁘게 읽었다.
그리고 익명의 비평가의 말을 빌려 내가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를 해줬다.
"애들아, 익명의 사회비평가님이 너희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대. 선생님이 대신 전달해줄게.(웃음) 비평가님은 너희가 진지한 자세로 책을 읽으면서 우리 주변의 문제를 발견하고, 이 문제에 대해서 친구들과 생각을 나누고, 그 생각을 발전시켜 글을 쓴 것에 대해서 큰 감동을 받으셨대. 너희들이 쓴 글 하나하나가 모두 소중했고, 자랑스러웠다는 거야. 그리고 꼭!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되어도, '이건 문제야'라고 느끼는 일이 있으면, 혼자 끙끙 앓지 말고, 우리가 했던 것처럼 주변 사람들과 대화하고, 글을 써서 생각을 알리는 일을 지속해달라셔."
"그리고 이건 선생님이 느낀 건데, 선생님은 8시간 동안 너희와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너무나 너무나 아쉬웠어. 바로 너희가 고3이라는 점이. 선생님도 비평가님이 느낀 것처럼 너희의 모습이 정말 멋지고 예뻤는데, 그걸 8시간밖에 보지 못해서 너무 아쉬워. 샘이 너흴 고1이나 고2 때 만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했어. 그럼 책대화도 2번 정도 더 하고, 선생님도 그 대화에 꼈을텐데, 고쳐쓰기를 1시간 더 해서 더 좋은 글을 만드는 시간을 가졌을텐데 하고... 아무튼 3학년 2학기에 이렇게 수업에 열심히 참여해준 너희들이 참 대견해~"
학생들은 턱을 받치고 피식피식 웃으며 내 진담 반, 농담 반의 축하 메시지를 들었다.
이어서 성찰 활동을 했다. 성찰 활동은 혼자서 천천히 구글 설문지로 제작한 배움 일지를 작성하고, 몇가지 내용들을 함께 읽어보는 것으로 구성했다. 학생들이 작성한 배움일지의 질문들은 다음과 같다.